주임신부님 강론
2020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 등록일
- 202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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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다들 답답하고 짜증도 나고, 걱정되기도 하고, 두려움도 느껴지는 상황입니다. 팬데믹 상태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아 백신이라는 희망이 너무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아 화도 나고 가슴속에 무엇인가 응어리가 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돌아가고 있고, 심지어 이 상황이 지나고 난 뒤, 인류는 어떤 모습일 것인지를 연구하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코로나를 극복한 인류가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유식한 말로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인류의 삶을 더 진보하도록 이끌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물론 장밋빛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한 희망이 버텨낼 힘을 주고, 이 시기를 잘 견뎌내는 것이 우리 삶, 그리고 나의 삶을 더 나아지도록 이끄는 출발점이 된다는 생각에 얼음처럼 굳어버린 마음을 녹이는 한 줄기 햇살을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도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러한 극적인 전환을 이미 이루신 분이, 패러다임 쉬프트를 우리에게 선물해주신 분이 이미 우리 곁에 계심을 바라보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창조된 모든 피조물, 그중에서도 인간의 인식과 사고와 삶을 변화시킨 분이셨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특히 심판과 구원이라는 개념을 극적으로 전환시켜주시면서 심판과 구원이 죽고 난 뒤에 벌어지는 일, 곧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은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알려주시며 사람들 안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던 딱딱한 고정관념을 깨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이 시기 백신이 전환을 예고하듯이, 당신의 이름을 통해서 전환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곧 구약의 예언에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전하셨고, 천사를 통해 ‘예수’라는 이름을 전해주시면서 이 두 이름 안에 우리가 알고 있던 구원과는 다른 구원의 모습을 미리 담아두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임마누엘’과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예수’라는 이름 안에 담겨 있는 의미로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은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영화의 예고편처럼 우리에게 전하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곧 다가올 성탄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더욱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단지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셨다는 놀라운 사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신비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날만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지금 여기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바로 이 시간이라는 길 위에서 구원이 시작되고, 이뤄지고 있음을 다시 마음에 담으라고 이날을 우리에게 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날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당신을 전하는 것, 당신의 구원을 알리는 것, 당신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지금 이 시간에 함께 머무는 것, 함께 자리하는 것, 함께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인 복음 선포와 복음 말씀을 살아가는 것은 복음 말씀을 큰 목소리로 읽는 것, 말하는 것이 아니며, 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를 곧이곧대로 실천하는 것에 머무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고 전하시며 당신께서 함께 하였듯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공간을 나누며, 함께 나의 것을 내어주는 것을 통해 사명이 완성된다고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의 현실 때문에 성탄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성탄이 속절없이 다가오기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하기만 합니다. 기다림이라는 능동적인 태도를 갖지 못하고, 다가옴이라는 수동적인 모습밖에 갖지 못하는 이 시절에 원망만 하게 되는 것 같아 울적해집니다.
게다가 성전에 홀로 외로이 자리하고 있을 구유를 생각하면 주님께 죄송한 마음도 저를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임마누엘과 예수라는 이름으로, 먹먹한 마음에 한 줄기 빛을, 우울한 기분에 훈풍을, 죄송한 마음에 환한 미소를 우리에게 전해주시며 주님의 구원이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때가 오롯이 당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속삭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시끌벅적한 성탄을 보내며 우리 곁에 오신 주님이 외면 받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내 안에, 그리고 우리 가족 사이에 주님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해주시며 당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눈앞에 둔 대림 4주일을 보내는 우리는 임마누엘과 예수라는 이름 안에 담아두신 희망, 곧 구원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마음에 담고, 그 희망을 소중히 모시기 위한, 그 희망을 키우기 위한 우리 안의 활기를 회복하는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상황은 우리를 암울함이 깊어지게 하지만 이 와중에도 주님께서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자 자리를 내어달라고 속삭이시니, 내 안에, 그리고 우리 가족 사이에 주님의 자리를 비워두는 우리 본당의 모든 분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