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곡리성당 자료
2023-01-03 무리한 묵주기도 (민족화해 위원회)
- 등록일
-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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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묵주기도
2023.01.03
김민철 안드레아 신부
(갈곡리성당 주임신부)
갈곡리성당 ⓒ갈곡리성당 페이스북
갈곡리성당은 북한지역의 순교자 두 분, 하느님의 종이신 김치호 베네딕토 신부님과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님을 기념하는 순교사적지입니다. 이 두 분은 1900년대 초반, 이곳에서 태어나신 남매지간으로 모두 한국전쟁이 있던 1950년 10월에 순교하셨습니다. 누님이신 수녀님은 소임지였던 황해도 매화동성당에서, 동생 신부님은 평양의 인민교화소에서 각각 피살당하셨습니다.
갈곡리성당에서는 매일 11시 미사를 봉헌하기에 앞서 30분 전부터 미사 참석자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기도의 지향은 당연히 두 분 순교자의 시복시성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미사 후반, 영성체 후 기도 다음엔 두 분을 포함한 ‘북한지역의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와 ‘시복시성 기도문’을 함께 바치며 124위 복자들과 253위의 하느님 종들을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순례자들께 순교자들을 위한 이 기도들을 집에 돌아가셔서도 매일 바쳐주십사 당부합니다.
이곳에 와서 생활한 지도 벌써 4년이 넘었습니다만 지내면서 생긴 특별한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매일 성당과 마을 주변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신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매일의 습관이긴 했지만 이곳에서 생활하고부터 매일 바치는 묵주기도의 양이 제법 많아진 점이 특별하다 하겠습니다.
김치호 베네딕토 신부와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를 기리는 동판 ⓒ갈곡리성당 페이스북
사실 이 습관이 생긴 이유는 그리 대단치 않습니다. 갈곡리에 부임하고 1년이 막 지난 때, 두 분의 순교 69주년이 가까워져 오면서 두 분을 위해 무엇을 봉헌할까를 고민했고 순교 70주년을 1년 앞두고 있으니 교우들과 순례자들과 힘을 합쳐 묵주기도 70만 단을 봉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갈곡리의 교우 숫자가 40명도 안되는 작은 수이기는 해도 모두 기도만큼은 열심히 하시니까, 또 순례자들이 엄청 많지는 않더라도 점점 이곳이 알려지고 있으니까’라는 생각 속에 그리 어렵지 않게 기도가 채워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 초반,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순례자의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걱정이 됐던 건 과연 70만 단의 묵주기도를 다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일단 저 혼자서라도 매일 70단을 바쳐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소 무리하고 무모한(?) 결심 속에 어찌 됐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게 되었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 속에서도 조심조심 성지를 순례하시는 몇몇 교우들에게도 이 내용이 전해지면서 2020년 10월 순교 70주년 행사 때엔 80만 단이 넘는 묵주기도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순간을 떠올리면 그저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족한 것을 알아서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안배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리고 맨 처음, 김치호 신부님과 김정숙 수녀님을 위해 매일 70단씩 바치던 묵주기도는 이후 그 대상이 북한지역의 다른 순교자들에게까지 좀 더 확장되었고 한반도의 평화와 우리 민족의 일치를 위한 지향도 더해졌습니다. 물론 그만큼 매일의 봉헌 단 수도 더 늘어났으나 더 이상 무리하다거나 무모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분명 처음엔 ‘어떡하지?’라는 마음으로 전전긍긍하며 시작한 묵주기도였는데 이제는 몸에 밴 습관이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께 습관처럼 기도 생활을 해 보시길 권합니다. 만일 ‘내가 과연?’이라는 걱정이 앞선다면, ‘하느님께서 알아서 도와주실꺼야!’라며 하느님의 안배를 믿고 용감하게 밀어붙이시면 좋겠습니다. 내 힘만으론 무리일지 몰라도 하느님께 무리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