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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의 생애와 영성
- 등록일
- 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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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축일, 10월4일)
[생애]
프란치스코는 1181년 또는 1182년에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아시시’Assisi에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가 태어났을 때 그의 어머니는 ‘요한’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으로 프랑스를 좋아하여 ‘프랑스 사람’이라는 의미의 ‘프란치스코’로 이름을 바꾸었다.
프란치스코는 값비싼 옷을 즐겨 입었고 친구들과 자주 연회를 가졌으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도 많았다. 그는 대단히 명랑하였으나 어려움을 몹시 싫어하였고, 비위가 약하였으며 인내심이 없어 화를 잘 내었다.
기사가 되는 것이 그의 희망이었기에 그는 1202년 아시시와 페루자 사이의 전쟁이 일어나자 참전하였지만, 아시시의 패전으로 포로가 되었다. 페루자로 끌려간 그는 의외로 감옥 생활을 즐겁게 받아들였고, 전쟁에서 이미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한 언행을 보였다. 포로 생활 중, 그는 포로들 간의 화목을 도모하였고, 자신은 앞으로 성인이 될 것 같다는 예언까지 하였다.
아버지의 금전적 도움으로 1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나 아시시로 돌아온 그는 이내 병상에 앓아누웠는데, 이 병상 생활 중에 그에게는 많은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병상에서 일어난 그는 기사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교황군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의 환시를 보고 아시시로 돌아갔다.
이후 동굴을 찾아다니면서 회개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나환자(한센병 환자)를 만난 후 비로소 결정적으로 그의 회개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어 성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에서 “프란치스코야, 쓰러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 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성당 수리에 착수하였다.
프란치스코가 주임신부와 성당 수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아버지는,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아들에게 화가 치밀어 아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과 앞으로의 소유권마저 빼앗으려고 그를 주교 앞으로 끌고 가 재판을 받게 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주교 앞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속옷까지 내어줌으로써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고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러자 주교가 자신의 망토로 프란치스코를 감쌌고, 이후 그는 은둔자의 옷을 입었다.
[초기 수도 생활]
프란치스코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환자를 돌보는 일과 성당 수리에만 열중하였다. 1209년에 그를 따르려는 동료들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2월 24일의 미사 중에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10)라는 복음을 듣고 깊이 감동되어, 이를 자신들의 생활 양식으로 삼았다. 그리고 은둔자의 옷을 종들의 옷으로 갈아입었는데, 이 옷이 현재 프란치스코회의 수도복이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그는 동료들과 함께 세 번에 걸쳐 복음서를 펴 본 결과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마르 6,8),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라는 구절을 발견하고는 탄성을 지르며 기뻐하였다.
[활동과 영성]
프란치스코의 설교
프란치스코는 다미아노 성당에서 허물어져 가는 교회를 수리해야 함을 깨닫고, 처음에는 성당 수리에만 열중하였다. 그러나 차츰 설교로 교회를 수리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프란치스코가 생애 동안 한 설교는 오직 회개와 찬미와 감사에 대한 설교뿐이었다.
그는 ‘모든 형제들이 할 수 있는 찬미와 권고의 말’에서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주 하느님, 삼위이시며 일체이신 주 하느님, 전능하신 주 하느님, 만물의 창조자이신 주 하느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며 찬미하고 찬양하며 감사드리고 흠숭드리십시오. 우리는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기에 회개하고, 회개하였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이십시오.…회개하고 죽은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니 복됩니다.…회개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이 회개와 찬미와 감사의 강론은 그의 생애 마지막 글인 <태양의 찬가>에서도 시와 노래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태양의 찬가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워라,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 있음을
오 아름다워라, 저 하늘의 별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은
오 아름다워라, 어머니신 땅과
과일과 꽃들 바람과 불
갖가지 생명 넘치는 물결
이 모든 신비가 주 찬미 찬미로
사랑의 내 주님을 노래 부른다.
(‘피조물의 찬가’로도 불린다.)
평화의 순회 설교자 프란치스코
그는 자신을 회개자로만 여기지 않고 평화의 사도로도 여겼다. 프란치스코는 수도회 안에만 머무르면서 설교하였던 문화와는 달리 나그네처럼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설교를 하였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평화를 전하였고, 설교를 하지 않을 때에는 늘 평화 안에 머무름으로써 그 자체로 설교가 되기도 하였다.
프란치스코의 가난
가난에서 오는 그의 평화는 성공적인 탈출(Exodus)에서 정점을 이룬다. 유언에서 그는 세속을 떠난 이야기를 하지만, 인준받은 회칙의 중심에서도 그는 탈출을 이야기한다.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 이분이 여러분들을 하늘나라의 상속자와 왕이 되게 하고, 여러분들을 물질에는 가난하게 하고 덕에는 풍요롭게 하는, ‘지극히 높은 가난의 극점’이십니다. 이분이 생명을 얻은 사람의 땅으로 인도하는 여러분의 몫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들, 이 가난에 완전히 매달려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늘 아래서는 결코 다른 어느 것도 가지기를 원치 마십시오.”(인준받은 회칙 6,4-6).
그를 가난의 극점인 하느님께 도달하도록 한 매체는 오직 가난한 예수 그리스도뿐이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것을 누차 강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그는 감미로운 선(善)의 상속자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관상(觀想)함으로써 모든 선인 덕(德)에 풍요롭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지상에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음으로써 지극히 높은 선(善)이요 사랑인 가난의 극점을 체험하였다. 그는 하늘 아래에서는 결코 아무것도 원치 않는 가난을 통하여 여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 방법은 무방법의 방법이요 무형식의 형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한이신 분을 유한한 기도 형식에 담을 수 없으며, 유한한 기도 형식은 유한만을 담을 수 있다.
프란치스코와 마리아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성모 마리아는 교회의 탁월한 모상(模像)이고, 교회의 얼굴이며 모습이다. 마리아의 모습이 그대로 교회의 모습이 되었다. 마리아는 ‘온갖 은총과 온갖 선이 가득한’ 거처이다. 그녀는 교회이며 성전이다. 즉 동정녀 마리아는 교회이고, 거룩한 삼위일체에 의해 축성된 첫 번째 교회이다. 프란치스코는 마리아를 삼위일체와의 관계 안에서 삼위인 하느님의 위대한 작품으로 관상하였다. 그는 교회를 통해 그녀를 관상하고, 그녀를 통해 교회를 관상하였다. 동정녀인 하느님의 어머니는 정결한 어머니인 교회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완벽한 모상은 마리아뿐이다.
프란치스코와 겸손
프란치스코는 <태양의 찬가>를 지을 당시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완전히 그리스도의 고통과 일치시켜 삼위일체를 더욱 힘차게 노래하였다. <태양의 찬가>를 지을 당시, 다미아노 수녀원 귀퉁이의 작고 어두운 창고 바닥에 자신의 등을 대고 앓고 있던 프란치스코는 육체적·정신적으로 몹시 탈진한 상태였다. 프란치스코의 영성인 ‘겸손’은 ‘땅’에 그 어원을 두고 있는데, 만물이 땅에서 움트듯이, 그의 겸손은 깊은 겸손의 땅인 그리스도로부터 솟아나왔다. 그의 영성을 감사, 봉사, 견딤으로 요약한다면, 겸손은 그 세 가지의 요약이며 땅처럼 자신의 하잘것없음에 그저 묵묵히 있음을 뜻한다. 그리스도가 그저 십자가에 못박혀 계셨듯이 그도 그렇게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구원이었고 동시에 창조였다. 그래서 그는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그대로 있음으로써 많은 일을 하였고, 그렇게 있음에서 자유를 얻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일을 하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만인과 만물과 만사에 생명을 주었다. 이를 통해 만인과 만물과 만사가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하였다.
[프란치스코가 현대인에게 주는 의미]
프란치스코가 살던 시대는 현대와 많이 다르다. 그러나 편하고 즐겁다고 해서 현대인들이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프란치스코가 누리고 갔던 참되고 완전한 기쁨을 지금 현대인들이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질투하는 나, 남을 탓하는 나, 자랑하는 나, 인정받기를 원하는 나, 나를 싫어하는 형제를 나도 같이 증오하면서 속을 끓이는 나, 약간의 멸시와 모욕 앞에서도 힘들어 하는 나, 약간의 칭찬에 흐뭇해하는 나, 충고를 싫어하는 나,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나, 높은 직책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을 지닌 나, 증오의 대상자를 제거하려는 나, 이러한 ‘나’는 분명 나의 불행의 원인일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실존적인 문제들은 본래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없는 존재임을 지각(知覺)하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프란치스코처럼 우리가 본질적으로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할 수 있어야, 비로소 신인식(神認識, 하느님을 앎)이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들의 불행의 원인인 죄악으로부터 현대인도 프란치스코처럼 해방과 구원을 갈구한다. 이 점에서 프란치스코와 현대인을 동일하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벌레들이기에 우리의 육신을 수치와 멸시를 받을 만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와 우리 사이에 차이가 있아면, 그는 자신의 본모습을 벌레로 정의 내리고 묵묵히 그리스도처럼 아무것도 아닌 그곳에 어린이처럼 머물러 구원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반면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본모습을 외면하고 의지를 나의 소유로 여겨, 거기에서 탈피하려고 끊임없이 발버둥침으로써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흔히 ‘나’라고 여기는 그 ‘나’는 도무지 없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못한 채 나의 구더기적 본래의 모습을 외면하고, 내가 아닌 것을 나로 착각하며 내가 되려고 발버둥친다면, 그 뒤에 따라오는 오류와 불행은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9052-905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