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재의수요일강론(2020년2월26일)
- 등록일
- 202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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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26_재의수요일강론.hwp
2020년 2월 26일 수요일
[재의 수요일]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예기치 못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모여서 재를 머리 위에 얹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차갑고 어두운 시기에 사순시기를 시작하려하니, 더 처절하고 힘겹게 느껴집니다. 매일 코로나19 확진자는 늘고 있고, 불안한 뉴스들은 많아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재의 수요일 예식은 우리의 이마에 재를 얹으며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라고 말합니다. 즉, 인간 삶의 덧없음을 알려줍니다.
누구나 삶에는 어둠이 있습니다. 때때로 자신의 어둠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마치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 양 행동한다면 우리 삶은 더 고립될 겁니다. 왜냐하면 실존적으로 우리에게는 해답 없는 의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코로나19만의 문제는 아니지요. 누군가는 고착화된 경제 구조 안에서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의 곳곳에는 전쟁과 기아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 자기 탓 없이 그곳에 태어났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우리 주위에는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어둠은 있습니다. 내가 바로 그 가난한 사람일 수도 있고, 내가 바로 그 아픈 사람일 수도 있으며, 내가 바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어둠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실존적인 상황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재의 수요일은 단순히 한 예식이 아니라, 삶 자체를 가리킵니다.
신학자 칼 라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말하기는 쉽다. 문제는 견디는 것이다. 우리는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불안에서, 일상의 무료함에서, 우리 자신과 이웃과 교회가 주는 실망에서, 우리가 하는 일의 헛됨에서, 세계의 잔인함과 냉혹함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는 늘 무기력이라는 먼지 속에 울면서 누워있게 될 것이다. 자신이 먼지임을 늘 체험하게 될 것이다.”
애석하게도 내 삶의 어둠은 걷히지 않고, 평생 우리를 따라오며, 항상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리스도인은 살과 먼지에 의해 구원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구원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 안에서도 우리와 함께 할 것이며,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삶의 여정을 걸을 것이라는 신앙이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앞으로 사순시기 동안 우리는 한결같은 하느님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성경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만드시고, 계약의 당사자로 초대하시고, 인간의 비참함 안에서 우리를 구하신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얼마나 간절히 우리를 찾고 계시는지, 그분께 우리가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마땅하고 옳은 일인지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지금동 신자 여러분, 코로나가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선제적 대응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 신자분들께서도 반드시 마스크를 끼고 다니고, 사람 많은 장소에는 다니지 않고, 흐르는 물에 손을 비누로 꼼꼼히 씻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어둡고 차갑게 사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지만 그 안에서 당당하고 기쁘게 일상을 사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코로나19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의료진들을 위해서도 지금 이 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십시오.” (로마 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