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등록일
2020-03-19
조회
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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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요셉대축일.hwp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오늘 복음은 성모님의 잉태에 대한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요셉과 성모님은 약혼한 관계였는데요, 성모님의 임신 소식을 듣기 전 요셉은 아마 이런 미래를 꿈꿨을 것입니다. ‘방은 두어 개 있고, 거실 넓은 집에서 살아야지. 자녀를 낳으면 갈릴레아 호수에서 함께 낚시도 하고 목공일도 하며 살아야지.’ 그러다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습니다. 마리아는 작은 마을에서 평판도 좋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임신했다는 사실은 요셉에게 굉장한 실망감과 배신감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마리아를 위해서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이 홀로 고독 속에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감내해야하는 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소식이 퍼진다면 마리아는 풍습에 따라 돌에 맞아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요셉이 혼자 외롭게 감내하며 버텨냈을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요셉은 꿈속에서 천사를 만났고 그 후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요셉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마음 속에서 많은 목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분노에 차서 ‘처녀가 임신을 해? 당장 법정에 가서 고발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혹은 ‘너도 마음이 힘들잖아. 친구들에게 하소연이라도 해. 그렇게 참으면 홧병 나.’ 이렇게 친절을 가장한 악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작지만 이런 목소리도 있었겠지요. ‘그 사람을 위해서는 네가 힘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그 사실을 감내해야해.’

여러 가지 목소리가 마음 속에서 울렸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요셉이 선택했던 것은 혼자 인내하고 아무도 모르게 파혼하는 것이었습니다. 참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닙니다만, 살다보면 때때로 진실을 혼자서 간직한 채 인내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어 고독 속에서 그 진실을 감싸 안은 채 버텨내야할 때가 있습니다. 요셉 역시 성모님을 위해 그런 선택을 택합니다. 이 선택은 틀림없는 하느님의 목소리였을 것 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비단 요셉만의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느님의 내밀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도 너무나도 많은 목소리를 듣고 살고 있죠. 요즘 같이 위험한 세상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면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다더라’ 라는 검증되지 않은 루머부터 시작해서 ‘이 물건을 사용하면 건강해 진다’, ‘이것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 등 수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더 나아가면 일상에서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누가 무슨 짓을 했다더라, 그 사람은 미워해도 될 만한 사람이다, 이런 선택을 해야 옳은 선택이다.’등 많은 소문들도 듣고 삽니다.
소란함 속에서 우리는 그 말이 악에서 오는 목소리인지, 선에서 오는 목소리인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요셉이 그 당시 기준으로만 판단했다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 속 깊이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을 들었고, 하느님의 선을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나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하느님께서는 말을 하고 계십니다. 양심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종교심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이 마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시끄러운 마음 안에서, 심란한 일이 있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침묵 중에 기도를 해보는건 어떨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내면의 깊은 곳에서 선을 향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