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재의예식다음목요일(2020년 2월27일) 강론

등록일
2020-02-27
조회
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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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7_재의예식다음목요일.hwp

2020227일 목요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신학과 5학년에서 6학년으로 넘어갈 때, 30일 피정을 합니다. 30일간 대침묵 피정을 하며, 성경을 읽고 관상을 하는데요, 성령을 청하며 성경의 장면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피정입니다.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고 먹고 마시기도 하며, 당시의 냄새, 소리, 촉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때 당시 시편 104장을 읽고 기도한 것을 오랜만에 읽게 되었습니다.

시편 104장안에서 저는 하느님의 피조물을 보며 경탄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 것입니다! 당신의 피조물들입니다! 당신이 지어준 꼴대로 사는 것들이 모인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향백 나무는 새들의 집이 되고, 사자들은 먹이를 찾고, 인간들은 노동을 합니다. 하느님께는 그날 먹을 양식만 바랍니다.

저는 저를 감추기 위해 어떤 악을 저지르고 있습니까? 제 상처를 감추기 위해 포장하며, 당신이 지어낸 꼴을 감추는 것을 보십시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내려준 제 본래의 모습이 소중합니다. 자신의 꼴대로 사는 곳에는 악도 죄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지 않은 것을 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읽으니 발가벗겨진 것처럼 창피하네요. 하지만 여러분들과 그때의 기도를 나누고 싶은 이유는 오늘 말씀들이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독서 신명기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부탁합니다. “나는 오늘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9) 오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를 것을 부탁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택해야할 생명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지어야할 십자가는 무엇인가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키지 못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마음 속 깊은데 있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있는, 그것을 따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음 속 깊은데서 우리는 경쟁이 아니라 화해를 원합니다. 사실은 싸움이 아니라 평화를 원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와 함께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느님께서 저희를 창조하실 때 주셨던 꼴은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마음을 가려버리는 것들이 많죠.

경쟁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계, 소유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분위기, 누군가를 이겼을 때 느껴지는 통쾌함. 어디서부터 시작된지 모르는 미움의 고리는 너무 강해져서 우리의 본래의 마음을 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와 복음은 저희에게 말합니다.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십자가를 지십시오.”

 

오늘도 날카로운 하루가 될 것 같네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미움도 생기고, 짜증도 날 것 같아요. 누군가의 탓을 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 놓고도 싶고요.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내게 사랑을 선택하라고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불가능 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현대의 저명한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의 말로 강론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며,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나는 사랑 할 수 있는 나입니다. 그런 나를 발견한다면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생명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