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사순 제1주간 화요일(2020년 3월03일) 강론
- 등록일
-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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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 사순 제1주간 수요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길 청하며 제자들에게 친히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많은 성서 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은 실재로 구체적인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종말의 때로 표현되기도 하고, 성경 역시 이러한 방향으로 작성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는 물리적인 어떤 나라로 한정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이미 하느님 나라이며, 모든 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하느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가 사는 곳이 하느님 나라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이와 관련해서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예전에 다녀왔던 연수에서 들은 북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북한은 1950년대 이후 합법적인 종교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1년경, 북한은 세계적인 고립을 피하고자 교황님을 북한에 초청하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교황청은 무늬만 신자가 아니라 진짜 신자를 교황청으로 데려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은 한 할머니를 찾았는데요, 그 할머니는 처음에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신앙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당국에서 안전을 보장하며 진실을 말하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한번 마음속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미사를 드릴 수는 없었지만, 40년이 넘게 자신의 일상 안에서 항상 하느님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지는 방법’이며 ‘아버지의 나라가 내 마음에 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을 마음에 초대하는 것, 일상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신 것 입니다. 그리고 신앙을 나눈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계신 하느님을 삶 안에서 느끼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하느님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정말로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가?’, ‘정작 나는 내 삶에서 하느님을 느낀 적이 없는데, 과연 하느님을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 영성생활하면서 이런 물음과 허무함이 많이 생기곤 합니다. 저 역시 영성생활 안에서 허무함을 느끼고 무기력에 빠져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영성지도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지난 두, 세달을 돌이켜 봐라. 침묵 중에 삶을 돌아봐라. 2-3개월 동안 분명 하느님께서는 너의 삶 안에서 활동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활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크고 작은 일상 안에서, 혹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혹은 하느님과 홀로 마주하는 고요한 시간 안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충만함을 느끼고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확신이 든다면 충분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누군가는 단순한 의미부여라고, 심리적이고 감정의 움직임에 불과하다고 말하겠지만, 이는 일상 안에서의 영적인 발견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무능한 분이 아니고, 삶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로 읽은 이사야서는 아름다운 하느님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짧으니 꼭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기름지게 하고, 우리를 배부르게 합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느님의 말도 이 세상에 내려와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거창하고 물리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그 영광의 날이 오기를 갈망하고 있지요.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말은 이미 지금 여기에 내려왔고, 신앙인의 마음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서 살아낼 수 있습니다.
비록 성당에서 영성생활을 할 수 없는 지금이지만, 하느님 나라를 일상 안에서 살아내는 것 자체가 영성생활입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동안 지난 2,3개월간을 돌아보며, 하느님의 활동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그 신앙을 우리의 삶을 통해 살아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