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3월 22일 사순 제4주일

등록일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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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사순 제4주일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오늘 복음은 눈먼 소경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결과를 보고 그 결과가 누구의 탓인지 묻는 데 익숙해 있습니다.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그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신은 깨끗하지만 그는 틀림없는 ‘죄인’임을 미리 단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눈먼 소경이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사람’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눈이 밝아져 구걸하던 신분을 벗어난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한 소경을 결국 회당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소경마저 공동체에서 쫓아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본디 생활 공동체뿐 아니라 친교의 공동체로 더불어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창세 2,18-25 참조). 외적인 모습에 집착한 유다인들은 눈먼 소경의 상태를 보고 그를 죄인으로 판단하여 그의 처지가 개선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낼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변화되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은 철저히 어둠 속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누가 참된 소경인지 물으십니다. 태생 소경인가, 아니면 사람의 속마음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신앙공동체에서 몰아내는 사람들인가?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주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이를 식별하는 잣대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빛의 세계에서 삽니다(요한 1,1-13 참조). 그는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기”(에페 5,9) 때문에 어둠의 행위에 끼어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비추어 주시는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빛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빛으로 인정할 수 없었고 소경을 죄인으로 낙인찍어 공동체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진짜 소경은 어둠의 세력에 빠져 버린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믿었지만 하느님이 속마음을 들여다보시는 분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겉모양을 보고 그의 됨됨이를 판단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하느님 백성을 위해 여러 가지 규정을 만들어 주었지만, 모세의 제자로 자처한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찾지 않고 모세의 규정으로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방식대로 하느님을 믿었기에 다른 사람을 단죄했습니다.

하느님을 믿습니까? 그럼에도 지금 ‘나’는 누군가를 단죄하고 있습니까?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내가 누군가를 친교의 공동체에서 몰아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빛의 하느님이 아닌, 내가 만든 하느님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잠에서 깨어날 때입니다. 죽음에서 일어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