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리 다이어리
지팡이를 짚고 성당 언덕을
- 등록일
- 20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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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미사를 드린 후 재가 많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남은 재는 사순시기에 내가 만나는 재를 머리에 얹지 않은 교우들에게 재의 예식을 거행할 생각입니다. 전례적으로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걸로 지옥이야 가겠나ㅋㅋ
사제관을 나서는데 할머니가 "에고, 새로온신부님인가 봐요?" "네, 어제 미사에 안오셨지요? 미사 끝나고 재 머리에 얹고 가세요." "네."
미사 후에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하고 준비했던 선물 견과류1병을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그러자 제대봉사자에게 당신이 받은 걸 주려는 듯 말씀하시자, '저는 어제 받았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당신의 가방에 선물을 넣으시고 고맙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하셨습니다.
인사를 나누신 후 지팡이를 짚고 성당 언덕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어내려가셨습다. 나는 성당 현관 앞에서 할머니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와 성당가는 언덕을 올라갈 때, 나는 먼저 뛰어가서 어머니가 오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천천히 가라는 어머니의 손짓이 보고싶은 날입니다. 사제관 앞에 큰 나무가지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웃음 지으시며 손짓하시던 그때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