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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승천대축일 교구장 메시지

등록일
2023-08-15
조회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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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성모승천대축일 교구장 메시지

 

 

평화를 위한 형제애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지상 여정을 마치신 후 하늘로 불러올려지신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하늘에 오르신 평화의 어머니께서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은총을 전구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여느 때와는 다른 폭염 속에서 맞이하는 올해 성모승천대축일이기에, 연로한 어르신과 병중에 있는 환자들, 특별히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야외에서 힘든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점차 심각해지는 갈등들을 마주하며

 

최근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더위만큼이나 숨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1년 반 전에 시작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곳 국민은 매일 파괴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며, 그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세계적 불안 요소가 되어 새로운 형태의 전쟁으로 진화하는 듯 보입니다. 이렇게 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과 분쟁, 갈등 상황을 생각할 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오늘날을 3차 세계대전의 시대라고 하신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어느덧 한국 전쟁 정전 70년을 맞이하였습니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을 멈춘 지 7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역사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든 비극입니다. 하지만 현재 남북의 통치자들은 마음을 닫은 채, 서로 간의 반목은 점차 깊어지고 있습니다. 상호 교류, 대화와 협력보다는 적대감으로 상대를 경계하는 형국입니다. 이러한 남북 갈등에 더해, 우리 사회 내 갈등도 더욱 심화하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물론, 세대 간, 성별 간, 빈부 간의 갈등이 점차 깊어졌고, 이에 따른 극단적인 결과로 최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범죄도 일어났습니다. 정말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의 현실입니다.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평화를 더욱 간절히 열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평화란 우연히또는 외부에서 거저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선익 보호, 사람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 소통, 사람들과 민족의 존엄성 중시, 형제애의 끊임없는 실천으로 이뤄지는 정의의 결과이며 사랑의 결실”(가톨릭교회교리서2304)입니다. 따라서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우리 자신이 올바로 실천할 때 얻을 수 있는 주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지난 3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즉위 10주년 인터뷰 중 일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교황님은 즉위 10주년 선물로서 다름 아닌 평화를 받고 싶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어, 교회와 세상, 세상을 다스리는 이들과 인류를 향한 당신의 세 가지 꿈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형제애, 눈물, 미소였습니다.

형제애란 자신과 같은 피붙이인 형제자매에게 본능적으로 갖는 사랑이자 연대감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나와 상관없는 너가 아니라, ‘나와 함께 우리를 이루는 너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사실, 우리 중에 나를 나로만’ ‘너를 너로만내버려 둘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형제애의 사명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남이 아니라 우리 중 하나로 여기게 하는 형제애는 구체적인 태도로 드러나게 됩니다. 바로 형제의 고통을 마주할 때, 그것이 자신에게도 내적 반향을 일으켜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눈물은 상대방과 자신이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요한 11,35 참조).

또한 내적 친밀감은 미소로도 표현됩니다. 미소는 상대를 향한 호의와 지지를 표현합니다. 미소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 홀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이것은 소란한 겉치레가 아닌 마음으로 다가감이기에, 형제에게 생명력을 전달하고 그를 성장시켜 줍니다. 우리 모두 교황님의 바람대로 형제애, 눈물, 미소를 서로 주고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공동의 집을 향한 형제애

 

아울러, 형제애를 지금보다 훨씬 넓게 확장할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그동안 외면해온 생태환경 보존 문제와 관련한 사안입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기후 위기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제 뼛속 깊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지난겨울에는 폭설과 극심한 한파를 겪었고, 수시로 지구 곳곳에선 대형산불이 일어났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폭염과 집중호우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균형 뒤에는 인류가 인간과 창조물에 대한 형제애를 잃어버리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온 잘못이 자리해 있습니다. 과도한 소비주의와 버리는 문화, 경제적 이익만 우선시한 무분별한 개발과 사회의 붕괴로 인한 세계적 불평등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생각과 삶의 방식을 크게 바꿔내야 합니다. 기후 위기는 생태환경에서 스스로 시작된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인류가 벌인 인간의 문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하셨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기후 위기를 비롯해 생태환경 문제를 직접 경험하고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듯, 해마다 심각해지는 이상기후 현상 앞에서 생태적 회개는 강력히 요구되는 소명입니다. 생태환경 보존을 위한 구체적 사항을 실천하는 건 물론이고, 이에 역행하는 여러 인위적 움직임에 대항해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누이며 어머니우리 공동의 집”(찬미받으소서1)을 위한 공동체성과 형제애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의정부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아,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의 모범이요 희망이신 성모님께 각자 자신을 내어 맡기도록 합시다. 성모님께서는 삶의 어려움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분 구원사업의 도구로 변화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비록 눈앞의 걸림돌이 있더라도,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주님과 그 곁에서 항상 기도해주시는 성모님께서 우리 모두를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길로 좋게 이끌어주시리라 믿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와 그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2023년 성모승천대축일에

 

+ 이 기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