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리 다이어리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 등록일
- 2023-08-27
- 조회
- 173
- 파일
오늘 복음에 나온 카이사리아 필리피와 지중해변에 위치한 카이사리아 팔레스티나, 그리고 카이사리아 카파도키아다.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에게 바쳐진 도시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황제의 위엄이 드러나는 신전과, 군사적, 경제적 힘이 넘쳐나는 경기장과 대중 목욕탕, 지식을 숭상하던 도서관이 있었고, 아름다움의 찬미로 관능적 조각상이 넘쳐나는 큰 도시였다.
힘과 지식과 관능을 추구하는 황제의 도시 한 가운데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색이 어떠했을까? 제국의 화려함과 위풍당당함에 잔뜩 주눅이 든 식민지 출신의 시골뜨기들이었으리라. 이 상황에서 예수님이 물으신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대답에 나오는 인물들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다. 답변에 함축된 의미인즉, ‘예수님, 당신은 황제의 도시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신전의 신이 아니요, 지성과 힘과 예술의 절정체인 황제와도 거리가 먼, 초라한 이스라엘의 궁핍했던 예언자들 가운데 한 분처럼 보인다’는 자괴심 담긴 의기소침한 답변이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스도란 즉위식 때 기름을 머리에 부음으로서 하느님께서 축성하신 왕을 일컫는다.
이 고백은 ‘겉보기엔 당신이 신도 아니고 황제도 아니지만, 내게는 당신이 황제보다 위대한 하느님의 아들이자 하느님이 기름을 부어 세운 왕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는 진실하고도 장한 고백이었다. 황제로 대변되는 세상의 영예를 넘어서서 진실한 신앙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고백이다.
세상의 권력을 상징하는 로마 황제와 우리 신앙의 근거인 예수님의 차이는 무엇일까? 당시 로마 황제의 통치방식은 “종교-전쟁-승리-평화”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뿐만 아니라 황제까지도 숭배하였다. 황제에게는 ‘하느님’, ‘하느님의 아들’, ‘세상의 구원자’, ‘주’라는 호칭이 주어졌다.
우리가 예수님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모든 단어가 사실은 황제들에게 적용되던 단어였다. 그들은 이렇게 권력과 재물을 종교로 삼고, 전쟁을 통해 자기들의 세력을 확장했고, 로마의 힘에 압도된 다른 나라들이 숨죽여 복종하게 된 상황을 가리켜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 했다.
이 로마의 평화는 힘 있는 소수의 특권층들이 힘없는 다수의 사람들을 억압하고 수탈하여 이루는 질서로, 그들만의 평화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세상 질서, 전혀 다른 평화를 제시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요약하면 “믿음-희망-사랑” 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믿음은 병든 사람과 약한 사람, 밑바닥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믿음이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목자의 사랑이자,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자비로운 사랑이고, 방탕한 생활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향해 달려 나가는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이 믿음과 사랑으로 내어주는 삶은 땅에 떨어진 밀알처럼 썩는 듯 보이지만, 죽음을 넘어서서 영원한 삶으로 건너가는 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희망이었다. 이렇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살아갈 때 누리는 평화가 바로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였다.
베드로의 고백은 세상 방식의 로마의 평화를 따를 것인가, 예수님 방식의 그리스도의 평화를 따를 것인가? 하는 기로에서 분명한 선택을 한 주체적인 고백이다. 또한 각자가 고백할 선택이기도 하다. 신앙에 있어서 타인의 고백은 나에게 소용이 없다.
나의 고백만 유효하다. 배부른 사람 옆에 있다고 내가 배부르지 않는다. 위대한 사람 옆에 서 있다고 내가 저절로 위대해지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성인이나 본당신부나 유명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고백을 요구하신다.
개별적 결단인 신앙 고백의 결과는 무엇일까?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후 이르신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믿음이라는 반석 위에 교회가 선다.
여기서 교회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삶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면 저승, 곧 죽음의 세력도 어쩌지 못하게 된다. 내가 당신이 누구신지 고백할 때만 예수님과 나의 관계가 성립하고, 그 기초 위에 하느님께서 머무르실 집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 집의 열쇠가 믿는 이에게 주어진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서 상징 언어를 염두에 두고 살펴보면 우리 삶에서 부닥치는 난감한 상황을 묶고 풀 열쇠가 신앙 고백에 달려있다는 말씀이다(A. 그륀).
내가 고백하는 신앙은 나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도록 묶어준다. 동시에 참된 신앙 고백은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거짓된 남의 믿음, 마음을 옭아매는 허상, 내 자유를 빼앗아가는 악의 세력에서 나를 풀어준다.
그저 겉도는 신앙, 남의 말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면 부자유의 사슬과 처벌의 두려움에 묶이지만, 나의 신앙 고백은 그 사슬에서 풀려 살아 있는 하느님의 아들을 내 삶 안에서 만나고 그리스도와 나를 하나로 묶어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한다.
그것이 믿는 이의 행복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진실한 신앙 고백에 주님은 “너는 행복하다!”하고 이르실 것이다.
오늘은 로마제국은 아니지만 힘 있는 자만 살아남는 세상처럼 느껴진다.. 황제의 도시는 아니지만 재물(맘몬)을 숭배하는 세상 한 복판에서, 예수님은 오늘 베드로가 아닌 내게 물으신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