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리 다이어리

추석날에도 순례를 오시네요

등록일
2023-09-30
조회
159
파일

추석날 오전에 합동위령미사를 드리고 사제관으로 올라와 점심을 차려서 먹었습니다. 교우분이 가져다준 모듬전과 엘에이 갈비 세조각, 시레기국으로 배가 든든하게 먹고서 설겆이가 끝나고 맥심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셨습니다.

간만에 하늘이 푸르고 햇볕이 너무 좋았습니다. 간만에 비타민D 합성을 위해서 기도 쉼터에서 묵주기도를 하려고 어머니의 유품 중 하나인 묵주를 들고 나갔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저에게 남겨주신 묵주를 가지고 기도할 때는 늘 틈만나면 묵주알을 돌리시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따갑지 않은 햇볕을 받으며 기도쉼터 꽃밭에 깔려있는 야자매트 위를 걸었습니다. 

묵주기도 5단이 끝날 때 쯤에는 약간의 땀이 이마에 맺혔지요. 시원한 물이 생각나 사제관으로 돌아오는 중에 한 자매님이 언덕 위를 혼자서 걸어올라오고 계셨습니다. 

"순례 오신 거에요? 이리로 오세요 강복드릴게요."라고 하자 "네, 아유 신부님이세요."라고 말씀하시더니 뒤를 돌아보시며 "여보, 빨리 오세요. 신부님이 강복 주신데요." 라고 큰소리로 부르셨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형제님이 한 분 올라오셨습니다. 추석인데 순례를 오셨냐고 묻자, 가족들은 지난 주에 모두 만났고 연휴 때는 의정부교구에 있는 성지를 모두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명을 물어 보았습니다. "아녜스랑 미카엘이에요."라고 답하셨습니다. 오늘 축일이셨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오늘 이 성지에 순례 온 축일을 맞은 미카엘과 아녜스에게 축복을 내리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아멘!" "천천히 기도하시고 좋은 시간 되세요." 말씀 드리고 사제관으로 올라왔습니다.

30여 분이 지난 뒤에 사제관에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내려가보니 순례오신 두 분이셨습니다. "기도 다 끝나셨어요."라고 하자, 눈물을 글썽이시며 "신부님, 성당에서 기도하는데 성령이 충만해졌어요. 두려울 정도로요." 두 분의 정성과 기도가 하늘에 닿았나 봅니다라고 말씀드리면서 놀란 마음을 가라앉게 해드렸습니다. 

성당에 기도하러 들어가기 전에 강복과 축복기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려고 초인종을 눌렀다고 하셨습니다.

"저보다는 하느님께 감사하셔야지요. 저야 당연히 해드릴 것을 한 거니까요." 두 분은 감사하다는 말씀을 몇번이고 반복하시면서 떠나셨습니다.

추석날 홀로 외롭게 성당을 지키시는 예수님이 당신을 찾아온 미카엘, 아녜스 부부에게 큰 축복을 내리신 듯 합니다. 

예수님과 성령의 축복을 받은 부부의 뒷모습이 푸른 하늘의 흰구름처럼 환하게 빛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