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리 다이어리
명동성당에서 오신 교우 세 분과의 만남
- 등록일
-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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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는 참 변덕스러웠습니다. 아침에는 흐리고 오전 11시 경에는 비가 오고, 점심 오후에는 잠깐 해가 나더니, 저녁에는 나무에서 소리가 날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불었습니다.
묵주기도 중에 저녁 9시가 되기 얼마 전에는 진눈깨비까지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묵주기도 후에 성체조배를 하는데 오전에 순례를 오신 두 분의 자매님과 한 분 형제님이 생각났습니다.
처음에는 두 분은 부부인줄 알았는데, 세 분 모두 명동성당을 다니시는 교우들이셨습니다. 보통은 순례를 오시면 같은 장의자에 나란히 앉는데 세 분은 각자 다른 자리에서 미사를 참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두 다른 본당에서 온 걸로 내가 생각했습니다. 순례자축보기도와 강복, 안수를 드리고서야 같은 본당에 다니시는 교우임을 알았습니다.
안수를 받으시고 할아버지가 세 분을 소개하셨습니다. "저희 셋은 모두 환자에요. 이 자매는 암환자. 저는 뇌졸증과 심근경색, 또 이 자매도 신경 계통의 병이 있어요. 저는 길에서도, 지하철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많이 넘어지고 몇 번이고 죽을 뻔 했지요. 그런데 성지순례를 다니면서부터는 한 번도 쓰러지거나 혼절하지 않았어요."
나는 세 분 모두 중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라는 말씀을 듣고 놀랐습니다. 순례기념 선물로 십자가의 길 책자를 드리고서 세 분께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책을 읽는데는 큰 문제는 없으시냐고?
세 분은 모두 독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셔서, 허영엽신부님의 '성경순례'책자를 드렸습니다. 의아해 하시길래 "제가 허영엽신부님 동생이에요. 책을 냈는데 인지세 대신 책으로 받아서 신암리성당에 보냈어요. 교우들이랑 순례신자들에게 선물도 주라고."
동생신부라는 말을 들으시고, 말은 많이 들었는데 직접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시고,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암환자이신 자매님이 사진작가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실력 발휘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점심약속이 있어서 인사를 드리고 외출 준비를 위해 사제관으로 들어오는데, 회장님과 교우들이 세 분을 모시고 쉼터에서 차 한잔 같이 하자고 초대를 했습니다.
무서운 병마와 함께 순례를 다니시는 세 분, 삶의 마지막은 그렇게 저 분들처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의 잉태소식을 세 명의 천사에게 전해들은 것처럼, 인생의 황혼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신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성체조배 중에 했습니다.
성당에서 나오니 심술궂게 내리던 진눈깨비는 그쳐 있었습니다. 쉼터에 설치해 놓은 태양열 조명은 궂은 날씨에도 빛을 작열하고 있었습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태양열 조명의 작은 전등들은 그 빛이 더 빛나겠지요. 그런데 눈과 비가 섞여서 또 오네요.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성 요셉축일을 맞은 동창신부 네 명도 빛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의 우물, 성소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중에서)
사막이 아름다운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우물', 즉 '성소'를 소중하게 키워보세요.
마음 안에 자신을 다잡을 수 잇는 성소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