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리 다이어리

연중제11주일 쉼터 십자가의 길 십사처 축복식

등록일
202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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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달리기를 마치고 사제관으로 들어가려는데 교우 한 분이 성모상 앞에서 합장을 하고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순례오신 것이냐고 묻자, "순례는 아니고 요즘 성당을 잘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성당이 보여서 기도라도 하고 가려고 왔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내가 다가가서 강복을 드리겠다고 하니 계단을 뛰어 펄쩍 뛰어 올라왔습니다. 강복을 주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성당 언덕을 내려가는 모습이 아침 햇살처럼 환하게 비쳐졌습니다.

성당을 외면하는 분도 있겠지만 말할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올 수 있는 분들도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바리사이와 죄인의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시던 분이 죄책감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선물로 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미사는 '연령들을 추모하는 미사'로 봉헌되었습니다. 미사 시작 전에 지난 수요일 쉼터에 설치가 끝난 십사처 축복기도를 신자들과 함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강론은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와 죽은 이를 위한 기도'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미사 후에는 짧은 연도를 바치고, 쉼터로 이동해서 십사처 중 제1처만 내가 성수를 뿌리고, 제2처부터 14처까지는 교우들이 원하는 곳에 성수를 뿌리도록 했습니다. 교우들의 힘으로 마련한 십사처, 교우들의 손끝에서 뿌려지는 성수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교우들 모두가 질서있게 각 처에 성수를 뿌렸고, 또 원하는 곳에 성수를 뿌렸습니다. 쉼터의 바윗돌에 새겨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십자가 이제 예전에 흙막이 역할을 하는 바윗돌이 아니라 예수님을 품고 쉼터를 지키는 기도바위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바윗돌도 그 쓰임새에 따라 그 역할이 시민을 지키는 성벽의 돌로, 하느님의 집인 성전의 돌로, 때론 전쟁에서 생명을 빼앗는 무기로 이제 쉼터에 자리잡은 바위는 예수님을 품고 예수님을 닮아가겠지요.

비록 성벽의 돌처럼, 성전의 돌처럼 거창하지는 않을지라도 신암리성당 쉼터를 묵묵히 지키면서 순례자와 교우들의 기도를 먹으며 살아가겠지요. 오늘도 두 분의 교우가 해가 진 저녁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모습을 보며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공감>에 게시된 '세 나무 이야기'(글:엘레나 파스퀼리햄)를 다시 읽어봅니다.

옛날 옛적 어느 산에 올리브나무와 떡갈나무 그리고 소나무의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미래를 꿈꾸었다.

첫번째 올리브 나무는 아름다운 보석상자가 되어 세상의 온갖 값진 보석들을 담고 싶어 했고.

두번째 다른 떡갈나무는 사람들을 많이 태울 수 있는 커다란 배가 되어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어 했다.

그리고 마지막 소나무는 하늘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이 자라 신께 영광을 드리고 싶어 했다.


몇 해가 지났다.

첫 번째 나무는 자신이 꿈꾸던 것과는 달리 그저 평범한 여물통이 되어 마소들이 먹는 짚이나 마른 풀을 담게 되었다. 두 번째 나무도 큰 배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어부들이 타고 다니는 자그마한 고기잡이 배로 만들어졌다.

세 번째 나무 또한 몸통이 잘린 통나무가 되어 산 아래 통나무 더미에 던져지게 되었다.

세 나무는 자신들이 꿈꾸던 대로 미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무척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은신처를 찾는 한 젊은 목수와 임신한 그의 아내가 여물통이 있는 마구간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여물통을 정성껏 잘 닦아 새로 태어난 아기의 요람으로 사용했다.

 첫 번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 바로 메시아라는 보물을 담은 상자가 되었다.


그 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한 사람이 갈릴레아 호숫가에 사는 몇 명의 어부들과 함께 자그마한 고기잡이배에 올라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물 위로 걸어갔으며, 거친 바람과 파도를 잠재웠으며, 병든 자를 고쳐주었다.

 고기잡이배는 이제 고기를 잡지 않고 그와 함께 진리를 위해 일하는, 사람 낚는 이들을 태우게 되었다.


그 후로 3년이 지났다.

통나무 더미에 누워 있던 세 번째 나무는 그 사람이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히는 십자가로 사용되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통나무로 버려졌다가 진리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를 모시는 영광을 입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