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리 다이어리
성탄절과 성가정 축일을 지내며
- 등록일
- 20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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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9일 성가정축일 또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태국에서 무안공항에서 착륙하던 여객기가 동체착륙을 시도하다가 성공하지 못해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비행기 꼬리만 남고 폭발한 상황이라 생존자는 많지 않을거라는 소식이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도 더 구조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올 한 해 지나가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마음이 또 무거워집니다.
12월 24일 오후 7시 30분 성탄밤미사를 이르게 시작하였습니다. 고령이신 교우분들을 배려한 사목회의 결정이었습니다.
신암리성당은 구유예절이 참 좋습니다. 다른 성당에서는 하기 힘든 예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유에 모시기 전에 사제는 참석한 모든 교우들이 강보에 쌓인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한분한분 모두가 정성스럽고 따뜻하게 예수님을 품에 안고 정성을 다하여 침묵기도를 바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교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예절이지요.
예수님을 구유에 모시고 교우들은 모두 구유경배를 하고 미사를 하였습니다. 미사 후에는 본당에서 준비한 성탄 선물을 모두에게 나누어드렸습니다. 그리고 성탄 밤미사 후의 단골음식인,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얀 김이 풀풀 날리는 어묵탕을 한사발씩 받아서 쉼터에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담소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일찍 시작해서인지 교우들이 모두 귀가하고 난 시간은 오후 9시 20분 정도, 성당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님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묵탕을 준비해주신 분들과 전례를 위해 오랜 시간 고생하신 교우분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감사하고 또 고맙습니다..
성탄대축일 4일 후에 맞은 '예수님, 요셉, 마리아의 성가정 축일', 가정에 대한 묵상 강론을 나누었습니다. 다양해진 가정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차별하지 않으며 서로의 다름을 공동선을 위한 길로 만들어가는 지혜가 함께 하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성가정축일이다. 가정은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녀 그리고 친지들로 구성된다. 그 가정 안에서도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이유로 해야만 하는 행동이 요구된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움,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자녀와 다른 친지들은 자신의 지위와 자격에 맞는 행동과 삶을 살아내야 한다.
어제의 그런 사람으로 생활해서는 늘 갈등 속에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과 관계가 사랑 속에서 성장해가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늘 질문하고 응답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 역시 예수와 마리아 그리고 요셉의 성가정을 모델로 하여 나의 가정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도량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선한 사람이 되고 올바르게 행동하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고, 그들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며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을 기만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나아닌 다른 사람이란 누구일까? 하는 문제이다.
다른 사람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도록, 우리가 모든 사람의 인간성이 풍요로워지는 길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아내와 남편, 자녀, 부모와 친지, 이웃이 바로 나 자신의 깊은 수렁을 빠져나오게 도와주는 그런 존재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 혹은 생명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은 나를, 그리고 너를 나보다 너보다도 먼저 사랑하고 계셨고 사랑하시며 사랑하실 것이다.’란 믿음이 필요하다. 이 믿음은 당신을 더 나은 사람 하느님께 한걸음 더 다가서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리라 믿는다.
나의 존재는 소중하다.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 바로 너라는 사람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모든 사람의 번영과 만족된 삶을 위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가치를 세심하게 의식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다른 사람의 희노애락을 공감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이 마비되어 자기 자신을 감옥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내가 아니다. 나는 그와 다르고 구분되지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줘야 하는 귀중한 존재로 체험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 사랑과 소중함을 바로 선한 성가정 안에서 정의와 신의 그리고 배려의 힘을 배우고 몸에 익힐 수 있음을 예수님의 가정이 가르쳐준다.
‘어리석게 행동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을 잘 수행하고 행동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형편없이 행한다면 형편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즉 미친 사람처럼 운전하면 미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가족과 친구를 존중하는 사람은 낯선 사람을 존중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현재의 행동 방식과 생각의 방식은 나중에도 그런 행동을 하게 될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지금 더 나은 행동을 해야 그 일이 반복되어 습관이 되고 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습관이 깊어져서 새로운 습관이 생겨나서 성품을 바꿀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신앙인의 회개이다. 대청소 한 번 하듯 성품과 습관이 바뀌지는 않는다.
아주 도덕적이고 아주 영성적으로 한 번 스위치를 켰다하더라도 그런 일시적 이벤트로 끝난다.
오늘 이것을 한 번 결심해보자.
예수님의 삶의 흔적 속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영을 발견하고 그 영과 함께 한 번 살아보자고.
성모 마리아의 삶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영안에서 그 영과 함께 한 번 살아가는 어머니가 되어보자고.
요셉 성인의 삶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여 그 영과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