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리 다이어리
부활제3주일다해를 지내며
- 등록일
- 202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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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도 교우들이 꽤 많이 순례를 오셨습니다. 4월 29일 화요일에는 대전교구 샬롬순례단 45명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미사와 강의, 식사, 기도를 하고 가셨고, 매일 3명에서 많게는 9명의 신자들이 순례를 다녀가셨습니다. 물론 미처 제가 만나지 못한 교우들까지 생각해보면 더 많은 교우들이 순례를 다녀가셨습니다.
순례교우들이 '기도를 더 하고 싶은 갈망과 하루하루 거룩한 삶이 되기를 갈망하기를,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하느님과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삶'이 되시기를 늘 희망해 봅니다.
또한 지난 5월 1일에도 신암리노인회에서 오후 3시경부터 약 1시간 동안 쉼터 잡초 제거 작업을 해주셨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은 늘 정리가 되고 깔끔해집니다. 한꺼번에 많이도 좋지만 적지만 자주 아니 매일 하는 것이 더 많이 결실을 맺는 것 같습니다.
이번 복음을 묵상해 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갈릴래아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밤새 고기를 못 잡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이, 그물을 오른쪽으로 던지라 해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고, 이어서 같이 식사를 하시고(성체 성사) 생선을 같이 잡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사도들의 소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부들을 맨 처음에 부르신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지상 사명을 마치시고, 다시금 호숫가에서 고기 잡는 그 어부들에게 나타나셔서 맨 처음에 약속하셨던 '천상 어부'의 사명을 일깨워 주시고 재확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 부름을 받았던 사도들이지만, 예수님과 관계를 맺지 않을 때, 예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없다면 그들의 작업은 모두 헛것이며, 헛수고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예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은 어부와 바다(그 안의 물고기)입니다. 잡은 물고기의 숫자 153은 여러 가지의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로니모는, 옛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153이란 숫자 모양이 물고기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해석은 1에서 17까지의 합계가 153이기 때문에, 153은 17과 관계되고, 17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17은 7과 10의 합인데 성서에서 7과 10이란, 숫자의 완전성과 모두 즉, 무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도로부터 이어져 오는 보편된, 보편적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라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153의 상징적 해석은 다분히 주관적인 해석이기에 단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음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지만 분열되지 않고 하느님을 향한 예수님의 발자취를 열심히 따라가면 일치하고 격려하는 공동체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두 번째 장면은, 알몸으로 있다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인간성을 묘사한 장면 그대로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꾸밈없고 가식 없는 기술입니다. 벗은 몸으로 예수님을 영접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제자들보다 빨리 가기 위해서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빈 무덤을 향해 달려갔던 베드로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세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준비를 다 해 놓으시고,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오라 하시어서,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음식까지도 모두 다 준비하실 수 있는 기적의 예수님이었지만, 인간의 협조를 꼭 필요로 하시었기에, 물고기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구원역사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필요 불가결의 관계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의미는, 음식(영성체)을 받고는 모두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고, 더 이상 의심하거나 묻거나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미사 중의 영성체로써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체험한다는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복음 내용을 요약하면, 어부와 바다, 인간의 헛수고, 예수님의 부르심과 권고와 명령, 그에 따른 수많은 수확, 그리고 우리의 수확으로 기뻐하시며 그것을 축복하여 주시는 예수님, 그래서 부활한 예수님을 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묻고 계십니다. '무얼 좀 잡았습니까?'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사무실에서, 무슨 활동에서 무얼 좀 얻었습니까? 하느님과 관계를 맺지 않을 때 '무엇'은 무의미합니다. 어쨌든 우리의 노력, 수고로 얻은 이 결실을 다시 예수님은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필요하시기 때문만은 아니고, 우리의 결실을 축복하셔서 다시금 우리 각자에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막 잡은 물고기 몇 마리 좀 가져오시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