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사순 제2주일 신부님 강론

등록일
2020-03-08
조회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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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사순 제2주일(2020. 3. 8)

[창세 12, 1-4ㄱ]- 아브람이 부르심을 받다

[2티모 1, 8ㄴ-10]- 감사와 격려

[마태 17, 1-9]-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여러분, 아버지나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십니까?

사실 이런 질문이 어리석은 것이지요?

저 역시 제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특히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주 편찮으셔서 저의 집안도 어렵고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힘든 집수리 노동일을 하면서 살림까지 하셨던 아버지는 어린 제 눈에는 너무나 존경스러운 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골목 저 앞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틀비틀 걸어가는 한 아저씨가 보였습니다. 약주를 꽤 많이 드신 모양이었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작업복을 입은 그 아저씨가 제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숨어버렸습니다. 비틀거리며 가시는데도 부축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죄송스러웠지만 남루한 작업복을 입고 비틀거리는 이 분이 제 아버지라는 것이 부끄러웠고,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 제 아버지는 당시 성당에서 인기스타셨습니다. 열심히 활동하시는 레지오 임원이셨고, 성당 행사에서는 사회자를 도맡으셨으며, 각종 체육대회에서는 운동도 잘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 아버지는 남자답게 잘생기셨는데, 아버지가 양복을 빼입고 성당이나 학교에 오시는 날에는 그런 아버지가 참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버지도 양복 입고 출근하시는 분이셨으면 좋았겠다고 상상하곤 했었습니다.

 

이렇듯 어린 제 눈에는 남루한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와 양복을 빼 입은 아버지가 달랐습니다.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의 아들이기보다는, 양복을 입은 아버지의 아들이고 싶었습니다. 작업복과 양복이 제 아버지의 인격과 능력을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제 눈에는 분명히 쫙 빼 입은 아버지가 더 좋게 보였고 자랑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제가 잘했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사실 오늘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 이유는 사순 제2주일인 오늘의 복음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안 그러시다가 왜 유독 오늘만 영광스럽게 변모하셨을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모사건 전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수난당하실 것이지만 곧 부활하실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멀쩡히 살아계신 분께서 갑자기 돌아가신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죽었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은 더욱 납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일치해 계셨던 예수님께서 작전을 짜셨을 것입니다. 믿음도 부족하고 영적인 눈도 뜨지 못한 제자들이 한 방에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이벤트를 말입니다. 그게 바로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이벤트의 충격요법은 성공했습니다. 제자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위대한 선조로 여기는 모세와 엘리야까지 봤고 해처럼 빛나시던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으니 당연했겠죠. 앞선 제 경험으로 비유하자면 멋지게 양복을 빼 입은 아버지를 만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서 진정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양복의 영광에 취한 나머지 베드로는 그곳에 초막을 짓고 머물자고 예수님께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재차 예고하셨고 그 산에서 내려가자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제자들이 본 그 양복의 영광은 반쪽짜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제 어린 시절의 가족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가 반드시 필요했듯이, 인류구원을 원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수난을 받아들이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은 고통스러운 수난을 앞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참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하면 실망한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예상하셨던 예수님과 하느님은 제자들에게 힌트와 희망을 주시고자 이 영광스러운 변모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요새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는 우리 또한 이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을 통해 희망을 발견해야겠습니다. 사회가 점점 더 우울에 빠질수록 부활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희망을 전해야겠습니다. 이미 우리는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죽은 이를 살리신 예수님을 알고 있고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의미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분명, 이 시대의 고난입니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 8) 이 고난을 기도로 이겨낸다면 우리는 분명 주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에 동참한 사람이라 불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