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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0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 등록일
-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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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0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찬미예수님, 오늘은 사순 제3주간 화요일입니다. 제1독서 다니엘 예언서의 ‘아자르야’는 세 젊은이 중 한명으로서,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내린 칙령, 자신이 세운 금 상에 절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불구덩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도 ‘아자르야’는 만군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이 기도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충실히 살아가는 이에게 많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정말 힘들 때, ‘기도’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말이 아니라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라는 기도를 바침으로써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마련하신 하느님의 ‘가엾은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라는 표현은 그분 앞에서 한 없이 자신을 낮게 만들고, 하느님을 더욱 크게 만들어 그분에 대한 큰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1990년 김수희씨가 부른 ‘애모’라는 가사에서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아름다운 노래를 떠오르게도 합니다. 그러니 ‘힘든 중에서도’ ‘가련한 이’가 되었을때도 우리의 입은 주님을 부르고, 그분의 자비를 청하는 이들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질문한 일곱 번은 인간이 쌓은 덕으로 낼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사람, 곧, 하느님의 나라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이들도 초대해 주셨음을 알고, 일흔일곱 번의 용서를 할 수 있는 주님을 닮은 이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너무나도 혹은 불가능한 일을 시키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며, 만들어 주실 것임을 당신의 거룩한 입으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을 닮아 ‘가엾음 마음’으로 이웃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하며 올바른 관계에 놓일 수 있도록 ‘수련’해야하는 것입니다.
또한,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지난 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용서(容恕)’라는 말에서 ‘용’은 담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나의 죄 혹 다른 이의 죄를 내 안에 담아낼 수 있으려면 마땅히 제 그릇이 그만큼 커야하고, 죄의 반대인 사랑 곧, 하느님께서 충만해야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적 과학시간에 선생님께서 커다란 수조에 물을 담으신 뒤, 검은 색 잉크 한 방울씩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보여주신 적이 있습니다. 한 방울의 잉크는 수조에 별 다른 점을 가져다주지 않았지만, 한 방울씩 더해질때마다 수조를 가득채운 물은 점차적으로 어둡게 그리고 마침내는 까맣게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더 많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담아, 반대의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1독서 다니엘서의 ‘아자르야’의 기도처럼 주님께 ‘자비’를 청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아시면서,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충만히 받아, 그분의 크심 힘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그분의 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