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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2일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 강론
- 등록일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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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2일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 강론>
찬미예수님,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며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은 사랑, 부처님은 자비라고 말합니다. ‘사랑과 자비’ 모두는 ‘사랑’을 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니 그분에게서 나오는 것이 다르게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비는 무엇과 비교될 수 없음을 우리는 명심해야할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저녁’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여인들에게 이르신 대로, 제자들이 한 곳에 모이자 그들 앞에 나타나시어, 그들의 두려움을 몰아내시고,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어, 당신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임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토마스는 있지 않았습니다.
토마스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때,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이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다고 했을 때도 그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과연 그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다른 제다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때, 그는 아마도, 주님과 함께 했던 자리를 떠돌며 그분을 기억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도,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밤에,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 곁에 있지 못하고 도망가고 숨었던 이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죽음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께서는 다시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자비는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왜’라는 질문을 넘어서서 완전한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계속되는 잘못에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건너띄고 ‘또’라는 말로 그를 나무라게 됩니다. 그래서 ‘왜’라고 계속해서 묻는 이들은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유’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 그 자체로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바로 이 모습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유’나 ‘정답’을 요구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사랑으로 상대방을 품는 ‘자비’를 드러내기 위해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주님의 평화’를 나누는 이들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한 주간 살아가시면서,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어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시간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