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21 교구장 사순절 메시지
- 등록일
- 202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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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 축제를 준비하는 때입니다. 사순절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와 회개의 삶을 살도록 초대하며 단식과 자선을 실천하여 용서하고 화해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때이기에 은총의 시기라고 합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에 교회는 재의 예식을 통해 신자들에게 사람은 흙에서 나온 존재임을 깨닫게 하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권고합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불안 속에서 살았습니다. 1년 이상 계속된 보건 위기는 세상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불안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감염을 막기 위한 방역 대책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전에 누리던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보람과 기쁨을 주었던 신앙생활이 어렵게 되었고, 학교가 문을 닫고, 일상에서 친근했던 생활공간이나 문화공간을 찾아가기 힘들게 되었으며, 여행을 가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도 커다란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동과 모임의 제한으로 인해 작은 기업과 상점들은 문을 닫고, 직장을 잃게 되어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수없이 늘어났습니다.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기도 했던 지난 시간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하였으며,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일상생활의 어려움 뿐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신자들도 많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순절은 기도하는 때입니다.
코로나19라는 시련은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과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신앙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을 또는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기에, 이번 사순절은 우리 신자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회개를 위한 시기를 엄중하고 대대적으로 선포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시온에서 뿔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원로들을 모으고, 아이들과 젖먹이까지 모아라…”(요엘 2,15-16), “너희는 단식하고 슬피 울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요엘 2.12-13).
예수님께서는 당신 생애를 통해 기도의 모범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시기에 앞서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셨습니다. 단식을 하며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는 마음을 다하여 처절하게 하느님 아버지께 바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도 틈틈이 조용한 곳을 찾아가 기도하셨으며, 수난을 앞두고 겟세마니에서 공포와 번민에 싸여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왜 한 시간도 깨어 기도하기가 힘드냐” 하시며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마르 14,38) 하셨습니다.
사순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뿔나팔을 불고 단식을 선포하며 남녀노소 모두가 대대적으로 기도하는 때였던 것처럼, 우리도 대대적으로 기도하는 때입니다. 우리 자신이 죄의 더러움과 나약함을 씻고 정화되기 위해서 기도드려야겠으며, 이 세상의 많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세상 사람들의 따뜻한 돌봄과 나눔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기도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가득한 세상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서도 기도드려야겠습니다.
사순절은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자선하는 때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금년도 계속되는 코로나19라는 환난은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내려주신 돌아봄의 기회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여러 차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전쟁과 테러를 보았으며, 홍수와 가뭄을 비롯한 자연적인 재난과 수많은 전염병들로 인해 사람과 동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세계 많은 곳에서 굶주림으로 허덕이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 곳에서는 넘치는 부를 누리고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불평등과 양극화는 이제 당연한 일로 여겨져 같은 나라와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이웃의 가난이나 불행에는 무관심해지고 있어, ‘무관심의 세계화’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까지 낳았습니다. 특히 이번 코로나 19로 인해 결정적으로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인 약자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인 환난을 치르면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고 봉사를 실천하는 연대를 목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 심지어는 죽음과 파괴를 가져오는 전쟁과 분쟁도 새롭게 기승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인류의 길을 얼룩지게 한 여러 사건들은, 형제애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피조물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2021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문).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코로나19 이후 또 닥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돌봄의 문화’이며 세계 여러 학자들이 제안하고 있는 ‘이타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돌봄의 문화나 이타주의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따뜻한 인간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살아야 할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큰 계명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가 내 이웃인지를 묻는 질문에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이웃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코로나19로 더 많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인 약자였음을 생각하며, 우리도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되도록 합시다. 이번 사순절에는 이 세상에 돌봄의 문화가 꽃피어나고,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많이 태어나길 기도드리며 지내도록 합시다.
2021년 사순 제1주일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