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 강론

2020년 12월 24일 주님성탄대축일 밤미사

등록일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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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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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이전에 우리가 맞이했던 성탄과는 너무나 다른, 이전까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성탄입니다. 함께 나누어야 할 사람들이 없고, 함께 모여야 할 자리도 없으며, 함께 경배해야 할 구유 또한 성전에 외롭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공허함, 허전함, 아쉬움, 죄송함 등 수많은 감정들이 아기 예수님께서 자리하실 곳을 차지하는 것 같아 마음의 무거움이 더욱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와 함께 이 상황이 얼마나 더 갈 것인지 막막하다는 느낌과 함께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그 무거움에 눌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 어둠의 그늘에 삼켜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저를 휘감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탄을 기다리며 오늘 복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우리 안에, 그리고 나 자신 안에 자리하는 그 그늘, 곧 어둠의 자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려는 자리라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 옛날 여관에 마저 자리를 얻지 못하셨듯이, 화려한 빛이 가득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한, 멋진 옷을 입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눈 앞에 펼쳐진 자리에는 당신께서 머물 자리가 없다고 하시며 어둠의 한 귀퉁이에 당신의 자리를 마련하셨음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이 상황이 그 옛날의 성탄과 더 닮은 거룩한 밤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록 기대했던 성탄과는 너무나 다르지만, 비록 생각했던 2020년의 계획은 와르르 무너졌지만,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멈춰질 수밖에 없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어두운 곳에, 언제라도 꺼져버릴 것 같은 촛불과 같은 모습으로, 곧 너무나 여린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다고 오늘 우리 영혼에 속삭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금 이 상황이 점점 우리의 일상과 마음을 어둡게 만들고, 그 어둠이 삶을 하나하나 허물 것 같은 걱정과 나를 집어삼키는 것이 아닌가 두려움이 느껴지지만 포대기에 쌓여 구유에 눕혀진 분은 그 자리에, 너무나 여리고 약하디 약한 모습으로 오셨음을 바라보라고 이 성탄에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당신께서 외면 받으셨다는 것을 깨우쳐주시며, 이제 여린 당신이라는 희망을 조심히, 그리고 정성스레 키워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성탄의 본질과 더 닮은 것 같은 이 상황, 여린 그분, 그날 한가운데 가난하게, 나약하게 자리하신 그분을 우리 안에 모시고 그 속에 담긴 희망의 불씨를 키우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라고 노래하였지만 정작 시끄럽고 휘황찬란한 조명 속의 밤만을 보냈던 우리에게 진짜를 선물해주시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오늘 밤, 고요한 구유 앞에서 우리 본당의 모든 분들께 축복의 기도, 감사의 기도, 희망을 기도를 봉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