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제 17회 전국 장애인 문학제 입선작 ( 7구역 4반 신기수 베드로)

등록일
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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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또 다른 나인 당신에게.hwp

                          나의 또 다른 나인 당신에게

 

1980년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처음 만났던 때부터 당신의 아름다움과 소박한 성격에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소.

우리는 돈암동 성당에서 친지와 친구를 모시고 소개받은 지 석 달 만에 백년가약을 맺었소.

그 후 우리는 신혼의 달콤함에 푹 빠져 살다보니 주일날 성당에 미사참례도 안하고 마포구 대현동 환일 고등학교 앞 전세방에서 오붓한 시간을 즐겼소.

이렇게 세상 즐거움에 빠져 결국 나는 1982325일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소.

아들은 백일을 갓 지났고 당신은 청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얼마나 괴로웠을 지 내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소.

나는 당신과 어머니와 동생들의 기도와 정성으로 사고 후 23일 만에 의식을 회복했고 34일 만에 한 쪽 눈을 떴고 50일 만에 입술을 열었소. 결국 한쪽 눈은 눈꺼풀이 내려앉아 뜰 수가 없게 되었지만 그것도 감사였소,

이렇게 주님의 은총으로 남편인 내가 죽음에서 깨어났지만 이십대 젊은 여자의 몸으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은 당신에게 혹독한 시련이었을 것이오.

나의 짜증과 신경질과 화내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나를 떠날 법도 했는데 당신은 참 고맙게도 잘 참아주었소.

어머니와 시동생과 시누이가 따뜻한 위로와 도움을 주었다 해도 그것 역시 짐이었을 것이오.

당신의 손길이 더욱 필요한 나지만 당신은 나를 챙기는 것보다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았소. 가장, 며느리, 형수, 올케, 나대신 아빠, 동생의 형, 여동생의 오빠 그리고 아내 역할까지, 나는 당신을 철인으로 만들고 말았소. 돈 벌어 가정을 이끌고 모친을 도와 살림도 하고 가정 대소사도 처리하고......일이 끝이 없었소.

그 와중에 둘째아들을 출산하고 시동생을 결혼시키고 두 시누이도 출가시켰소.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몹시 힘든 상태지만 당신은 두 아들의 교육을 위해 처제 가족의 도움을 받아 견학이며 현장학습을 같이 다녔소.

그 덕분에 내 분신 두 아들은 훌륭하게 자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었소. 정말 고맙소.

혼자 살던 누님을 요양원에 모시고 잘 보살폈소. 결국 작년 시월 누님은 주님 품에 안기고

당신은 그 뒷일을 너무도 감사하게 처리하였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 뿐이었소.

몇 년 전부터는 내가 자주 넘어지는 바람에 팔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얼굴을 여러 번 꿰매어 당신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하였소.

이러한 순탄치 못한 생활 속에서도 내가 돈이 없어 힘든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은 모두 억척스럽게 생활해 온 당신 덕이오.

어머니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 큰아들 재희 부부와 두 손녀에게 부족함이 없이 사랑을 베풀어주고 막내인 승민의 유별난 까다로움까지 잘 받아주고 이끌어주고 사랑을 해주는 당신이 너무도 훌륭하오.

내가 몸이 불편하다보니 마음 씀씀이도 부족하여 아이들을 잘 사랑하지 못해 당신에게 어려움을 안겨주어 정말 미안하오.

그리고 시동생과 두 시누이와 사이좋게 사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요.

여보, 나에게 오늘이 있다는 놀라움.

나와 우리 가정에 베푼 당신의 그지없는 큰 희생

수없는 우여곡절을 벗어난 모든 신비로움.

나는 그저 당신께 감사할 뿐이오.

나의 이 불편한 몸을 다독여 동유럽 성지순례로 1011, 이탈리아 성지순례로 1011일 다녀오게 해주어 정말 고마웠소.

당신은 내 아버지 같은 사람이오. 또 당신은 내 어머니 같은 사람이오.

당신이 정말 내 어머니고 당신이 정말 내 아버지요,

나에게는 당신 밖에 없소.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새로 주신 이 삶을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 수 있도록 당신이 나 대신 가정생활 모두를 이끌어준 것이 은혜 중의 은혜요.

내가 아무리 당신에게 사랑을 베푼다 해도 부족하고 부족하기만하니 안타깝기가 그지없소.

그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생각과 판단이 너무 이기적이고 편협해 부끄럽소.

당신의 협조와 성원에 힘입어 하느님께 영광드리고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 같이 나의 남은 삶을 당신을 위한 감사와 배려로 살겠소.

 

                             당신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남편

                                  7구역 4반   신 기  수  베드로

2022년 제17회 전국 장애인 문학제 입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