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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드 라 투르의 `목동들의 경배`

등록일
202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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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 조르주 드 라 투르(1593~1652), 1645년작, 107×131㎝.

 

오늘 소개해 드리는 그림은 아기 예수가 탄생한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작품인 ‘목동들의 경배’는 그의 독특한 표현방법이 당시 유행하던 기법과 어우러져 개성 있는 작품이 됐음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드 라 투르도 300년 가까이 완전히 잊혀진 화가였습니다. 그의 그림이 재평가된 것은 화가에 대한 재평가가 있었던 전시회 덕분이었죠.

“바로크 시대 예술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작품이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온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1913년 카라바지오주의와 리얼리즘들에 대해 새로이 조명하는 전시회가 있었는데, 이를 통해 저 유명한 ‘촛불의 조명’으로 그림을 특징지을 수 있는 개성을 가지고 당당히 루브르에 입성했다.”

1600년대 초반, 이탈리아는 르네상스를 끝내고 바로크 예술의 분위기로 들어가던 때였고, 그 시기에 가장 빛난 화가는 카라바지오였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벨라스케스가, 네덜란드에서는 렘브란트가 그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아예 ‘카라바지오주의’라는 이름으로 그의 스타일을 흉내낸 그림들이 한 세대를 휩쓸다시피 했습니다. 조르주 드 라 투르도 그중 한 사람이죠.

“아기를 가운데 두고 차례차례 배열돼 있는 등장인물들의 구조는 대단히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는데, 이는 꽤 전형적인 자세의 모범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림 오른쪽의 요셉이 가리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비치는 양초 불빛에 시선이 닿으면 그 눈길은 차근차근 순서대로 그 강한 음영의 대비에서 시작해 아래에 있는 아기의 얼굴을 지나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씩에 시선을 주도록 돼 있다. 이는 드 라 투르가 좋아하던 표현 방법이다. 재치있게 빛을 가리고 있으면서도 조명효과는 충분하게 보여주는 이 손과 촛불은 드 라 투르의 가장 확실한 개성이다. 왼쪽 붉은 옷을 입고 손을 모으고 있는 마리아의 옷에 비쳐지는 조명과 아기 예수의 얼굴에 닿아 있는 빛은 두 사람이 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신성하게 연관을 맺고 있음을, 말하자면 이제 인류의 구원을 위해 희생당할 사람이라는 표시처럼 보인다.”

원래 중세 시절 아기 예수의 그림은 동방박사 세 사람이 경배하는 것이 훨씬 유행이었다고 하죠. 그때는 그림의 수요층이 아무래도 돈 많은 귀족이나 왕족들이다 보니, 신분이 높은 것으로 간주되는 동방박사가 잘 차려입은 상태로 예수를 친견하고 값비싼 선물을 주는 장면이 그려진 것에 만족한 것이죠. 하지만 바로크 시대로 들어오면, 일반인 신자들도 아우르는 이미지가 필요해집니다. 그 바람에 목동, 그것도 양떼를 돌보는 착한 목동들로 이야기되는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게 됩니다.

원래 목동들의 경배는 성경에서도 거의 다뤄지지 않던 주제인데, 17세기에 들어서면 이것이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예수를 기리는 그림의 내용이 바뀌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한 손으로 촛불의 밝은 불꽃을 가리고 있는 장면은 항상 드 라 투르 그림에서 나타나는 포현입니다. 직접적인 조명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등장하는 예수 자신이 가장 밝은 불꽃이라야 하는 것을 반영한다고 하죠. 예수가 가장 밝은 얼굴이 돼야 하기 때문에 촛불은 가려진 채 간접조명처럼 사용됩니다. 오늘의 그림보다 5년 먼저인 1640년에 그린 ‘아버지 목수 요셉을 돕는 어린 예수’라는 작품에서도 이 촛불에 대한 표현은 계속 나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있어 그림에 대비는 더욱 선명하고 동시에 드라마틱하죠. 이런 연출로 세련되게 인간의 내면까지 묘사하던 드 라 투르가 한동안 그렇게 사라졌던 것이 이제는 미스터리가 될 만큼, 이 화가는 현대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화가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