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재의예식다음토요일(2020년 2월29일) 강론

등록일
2020-02-29
조회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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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29일 토요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교회 안에는 외롭게 영성의 히말라야에 올라앉은 그룹들이 가끔씩 있다. 그 중에는 자기들만이 구원에 전세냈는지, 제의를 입은 채 사람들과 부딪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할 말은 한 마디 밖에 없다. 하느님 나라에서 자기네가 엘리트라고 느낀다면 그들은 더 이상 엘리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학력과 지혜는 매우 부서지기 쉬운 그릇에 담겨 있다는 것을.”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책의 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아찔합니다. 저 역시 감추어진 죄인입니다. 아직 죄가 드러나지 않아서 의로운 행세를 하고 있는 죄인일 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때때로 의로운 척 행세하는 모습이 사실 제 본래의 모습인양 착각하고 살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스스로의 삶이 굉장히 만족스럽지요. 아마 그때의 저야말로 하느님 나라에서 엘리트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종교적 엘리트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일부 바리사이들은 배운 티를 내거나 그릇된 우월감을 느끼며,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우매한 군중들을 멸시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을 만납니다. 바리사이들은 의아합니다. 기적을 일으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자신들과 같은 부류인 것 같은데, 자꾸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당시 유다인들은 죄인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였고, 율법을 어긴 사람들은 부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정결한 사람도 부정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묻습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죄인들을 위해 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가리켜 이 말을 했던 것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죄가 무서운 이유는 더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도 그렇죠. 죄인들과 아픈 이들은 예수님 앞에 와서 울면서 엎드려 죄의 용서를 청합니다. 하지만 일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사람들을 단죄하고 심판할 뿐, 죄인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만의 종교적 카르텔을 만들어두고 다른 사람들을 배척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믿었습니다.

 

우리의 드러나지 않은 죄를 바라봅시다. 누군가는 굳이 죄의식을 만든다고 불편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활을 기다리는 지금이 바로 가장 적절한 회개의 때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죄를 직면할 때 스스로가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이고, 평생 이 죄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암담하고 비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 슬퍼하는 나와 함께 슬퍼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의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이미 나와 함께 있었고, 나와 함께 슬퍼하고 있었음을 체험할 때, 우리는 죄 안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죄 안에서만이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잔치를 벌이고 즐겼던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의로웠기 때문에 초대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과 먹고 마시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초대받지 못헀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너무 의롭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예수님의 초대를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비통해하고 슬퍼하며 이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 순간은 약간 움츠러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정하는 것의 끝은 비통함과 슬픔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며 다시 태어나고 생기있게 살 수 있는 과정입니다. 은혜로운 사순시기에 참으로 생생하고 구체적인 하느님의 사랑에 우리를 개방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예수님의 잔치 상에서 함께 먹고 마실 수 있게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