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4월 4일 첫째주 신심미사

등록일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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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첫째주 신심미사.hwp

오늘은 4월 첫째주 토요일이기에 성모신심미사로 봉헌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죠. 성모님과 친척들은 예수님을 찾아오는데요, 가족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언제 들어도 참 모진 말이죠. 그래서 이 복음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합니다.

오늘 복음은 복음이 쓰였을 당시의 배경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오늘 복음이 쓰이고 읽혔던 ‘삶의 자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사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공동체는 사회적으로 모두 함께 사는 큰 가족과 같았습니다. 이런 시스템의 장점은 사회가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고, 전통이 확실히 전달되어 민족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쉽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른 나라들의 식민지가 되며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이스라엘 공동체의 상황은 변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이스라엘 공동체는 종교와 사회가 일치되어있었는데요, 식민지 시대가 되며 종교와 사회 시스템이 분리되며 단일한 기준으로 사회가 유지될 수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정교일치시대에는 세금을 한번만 내면 되는 것이 이제는 두 번씩 내야했고, 따라서 가계 지출은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됩니다. 또한 그들의 사상은 헬레니즘 문화라는 선진사상의 영향을 받으며, 이스라엘 민족들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이스라엘 지배자들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더 세세한 계명들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사실 부유하고 지배계층의 사람들이 수많은 계명을 지키기 어려웠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금도 낼 수 있었고, 세세하게 나눠진 계명을 지킬수 있을 정도로 여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세금을 낼 수도, 계명을 지키기도 힘들어집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르면 이렇게 죄인이 된 사람들은 희망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시대는 사람의 질병마저도 자신이 지은 죄의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병자들 역시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갈 곳없이, 불러주는 곳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예수님만이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존에 있던 피로써 이루어진 민족 공동체가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신 것입니다. 더 이상 공동체는 외적인 규율에 의해 정의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의 본질, 소외된 사람들을 불러모으시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한 가족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여 있는 지금동 공동체 역시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이죠.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하는 영적인 공동체로서 우리는 모여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그 사랑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저 역시 코로나가 기승해서 집안에만 있으니, 또 제가 다니는 곳은 잘 꾸며진 곳들 위주라 제 눈에는 힘들어 하는 이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남은 사순시기동안 힘들어하는 이웃들을 찾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지금동 공동체 역시 지금은 만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나눌 수 있는 영적인 공동체가 되도록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