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4월 3일 강론

등록일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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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가르쳐 주시던 신부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전례력은 상승하는 그래프이다.” 이 말의 즉슨, 시기별 복음이 하느님을 향한 우리 믿음의 상승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연중1주의 복음이 ‘그리스도가 누구야?’ 라는 긴가민가한 의문을 보여준다면, 연중34주가 되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말로 우리의 왕이시다.’라는 신앙고백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이는 대림, 성탄, 사순, 부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사순시기의 마지막 주를 성주간이라고 부릅니다. 성주간 즉, 거룩한 주간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주입니다. 그리고 성주간을 기다리며 지난 사순4주간부터 읽었던 텍스트는 요한복음이었습니다. 지난 주부터 계속해서 비슷한 복음을 읽는 것 같다고 느끼지는 않으셨는지요? 그 생각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성주간을 기다리며 우리가 계속해서 읽고 있는 복음은 요한인데, 왜냐하면 예수님이 겪고 있는 갈등들은 비슷한 구조로 흘러가며, 조금씩 조금씩 고조되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2주간 읽었던 요한복음은 두가지 사항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급진적인 계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냅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표징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며, 표징은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둘째는 이런 급진적인 계시에 대한 유다인들의 반응입니다. 유다인들은 점점 더 예수님의 말과 행동에 참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 비극적인 측면은 아마 그들의 하느님을 향한 신실함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했던 이유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가 신성모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정치적이고 그들의 권익에 예수 그리스도가 대항한다는 이유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지난 2주간 우리가 들었던 내용은 이렇게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보이시고, 이것을 본 유다인들,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분노하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할 말과 행동을 하셨고, 유다인들은 죽이려 하지만 예수님은 절대 붙잡히지 않으십니다.
특히 오늘 주님께서는 드디어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동안은 약속한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자신이 메시아였다는 사실만 드러냈죠.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며, 그리스도께서는 말합니다. “나를 믿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만, 내가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표징은 믿으십시오. 그렇다면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가 단순히 유다인들의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단순히 한 민족의 종교로써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 역시 각각의 개인에만 국한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표징은, 그분의 수난과 부활은 공동체적이고 지구적입니다. 하느님이 유다인들에게만 하느님이 아니라 온 인류의 하느님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표징 역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유의미한 사건이 아니라, 온 인류, 온 세계에 관한 사건이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이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이 내려오길 기원하는 것입니다.

이제 곧 성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이 겪고있는 갈등의 끝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년 사순이 새로운 이유는 올해라는 삶의 맥락이 다르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새로워지고, 신앙인인 우리들이 실천해야할 복음의 내용이 새로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상황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지역사회에 있는 큰 병원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구석구석에서 위험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맥락 안에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이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이 내려오길 함께 실천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