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재의예식다음금요일(2020년 2월28일) 강론

등록일
2020-02-28
조회
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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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8_강론_재의예식다음금요일.hwp

2020228일 금요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신자분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된지 사흘정도 되었네요. 사제단은 아침에 모여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필요한 청원들과 여러분들이 올리신 지향을 두고, 넷이서 도란도란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영성생활을 어떻게 하시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미사가 중단되서 두려운 점은 “‘성당에 나오지 않아도 삶이 변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느끼면 어떡할까?”라는 점입니다. 특히 매일 미사를 나오시던 분들이 미사를 나오지 않게 되면 신앙에 대한 허무함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이 채워주던 것들이 다른 것들로 대체된다고 느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삶이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고 해서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복음말씀대로 나는 간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요한 8,21.14,1참조) 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밖으로 나가면 예수님이 없이 살아도 아무런 불편함을 못 느끼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공허함을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영적 빈곤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죠. 사실 근본적인 공허함은 물리적 채움을 통해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비움을 통해 삶은 충만해지고, 이러한 비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통한 비움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혹시 여러분들은 일상 피정이라는 말을 알고 있나요?

이는 의식적으로 침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루에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들에서 거리를 두고 스마트폰도 내려두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하느님에게서 무언가를 받았는지발견합니다. 일상 안에서의 약간의 의식적인 침묵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상처와 치유,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사랑해주시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관계야말로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게하는 원동력이 될 것 입니다.

일상을 새롭게 본다는 것은 시간을 그저 흘러가는대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 안에서 이미 활동하고 계신 성령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들면, 무한한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가정을 부양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남녀, 날마다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삶을 긍정하며 성령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신랑이 빼앗길 때에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코로나로 많은 것들을 빼앗긴 것처럼 보입니다. 230여년 만에 한국 가톨릭 모든 교구에서 미사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편안했던 일상도 사라지고, 불안함과 불편함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자영업을 하시거나 개인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실질적인 고통을 마주할 것 같아 걱정도 많이 됩니다. 이 상황에선 누군가의 위로도 효과가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 시기에 영적 단식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의식적인 침묵을 통해 일상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볼 수 있다면, 지금의 상황은 비록 안좋을지라도 조금이라도 힘을 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 우리 삶에 약동하는 성령의 활동을 포착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길 기원합니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합니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당신을 애타게 그립니다.”(시편 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