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사순 제1주간 금요일(2020년 3월06일) 강론

등록일
2020-03-06
조회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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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_사순제1주간금요일.hwp

200306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신학교에 입학하던 날 본당 선배는 제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비밀을 하나 알려줄게. 신학교에 천사들이 산다고 생각하지 마. 천사는 몇 명 없어.” ‘에이, 설마라는 생각으로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정말로 천사가 별로 없었습니다. 동기를 보며 제가 주로 했던 생각은 저런 애가 신부님이 된다고?’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때 당시 저는 내가 이렇게 성숙한 사람이니 동기들을 이해해주고 사는거야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 신학교에서 떠날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해해주고 있다고 착각했던 그 동기들이, 오히려 그 동안 저를 받아들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기들의 이해심과 사랑으로 신학교에서 버티고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제가 신학원에서 배웠던 것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법이었습니다.

 

오늘은 미움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할 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면 예물을 바치기 전에 그 형제와 먼저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금이나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봉사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웃과 평화롭게 지내는 것, 형제 자매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더 기뻐하시고, 더 소중한 봉헌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세상에는 옳지 못한 일보다 나와 생각이 다른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미워할 때 그 사람들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다르기 때문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미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틀림과 다름. 틀린 것은 옳지 못한 것이기에 고쳐야하는 것이지만, 다른 것은 이해하고 인정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차이를 인정하지 못할 때, 그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여 공동체에서 쫓아내게 됩니다.

더 나아가, 화해하는 것은 단지 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과 화해할 때, ‘그 사람보다 나은 사람인 내가 용서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용서를 베푼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는 시혜하듯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움과 증오의 독은 상대방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항 안에서 한 마리 물고기가 죽으면 다른 물고기도 살 수가 없듯이, 다른 사람을 우리의 삶에서, 마음에서 죽인다면, 그것은 결국 내 자신을 내 삶에서 고립시켜버리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가라지를 거두어서 태워버리고, 밀은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30)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세상 마지막 날에 악인과 의인을 구분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러니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인정할 일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타인을 받아들인 사람은, 이웃과 화해한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며 살면 좋겠습니다.

1독서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에제 18,2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