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솜회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 등록일
-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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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부활 성야 (다해/루카24,1-12)
260404 금2
그리스도교 전례의 정점이자 ‘모든 밤의 어머니’라 불리는 가장 장엄한 밤의 한가운데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성당을 가득 채운 빛은 가장 절망적이었던 ‘끝’의 자리에서 피어오른 하느님의 ‘시작’을 상징하는 승리의 표징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끝’을 마주하죠.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인 죽음, 평생을 바쳐 일궈온 사업의 파산이나 깨어진 관계, 혹은 더 이상 고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진단서일 겁니다.
인간의 논리로 볼 때, ‘끝’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고,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으며, 모든 가능성이 없다는 선언입니다. 그 끝의 벼랑 끝에서 절망하고, 하느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원망하며 울부짖기도 하죠.
그러나 오늘 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다른 논리를 제시하십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고 있어요. 인간이 자신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소진하고 “이제 정말 끝이다”라고 두 손을 드는 바로 그 지점이, 역설적으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전능하신 손길을 뻗치시는 ‘시작의 자리’가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스승이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처형되고 돌무덤에 갇혔을 때, 그것은 완벽한 끝이었습니다. 지녀왔던 모든 희망, 정치적 해방에 대한 열망, 스승과 함께 꿈꾸던 새로운 세상은 그 무덤의 차가운 돌덩이 뒤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덤은 닫힌 공간이며, 부패와 망각이 부유하는 어둠이였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문을 걸어 잠갔고, 영혼은 깊은 밤의 어둠 속에 매몰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가장 완벽한 끝이라고 믿었던 그 무덤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가장 경이로운 ‘새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실패를 당신의 구원으로 일구셨고, 인간의 절망을 딛고 희망의 꽃을 피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역설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가진 것이 많을 때보다, 내가 완전히 비워지고 무너졌을 때 더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인간의 자아가 가득 차 있는 곳에는 은총이 머물 자리가 없기 때문이에요.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됩니다”라고 고백하며 무너질 때, 비로소 하느님의 무한한 에너지가 내 삶의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합니다.
삶에서 ‘돌무덤’과 같은 상황을 겪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 무덤의 돌을 굴려내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곳이 바로 내가 너를 위해 새 일을 시작하는 곳이다.”
부활은 단순히 2,000년 전의 기적적인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오늘 내 삶 속에서 반복되어야 하는 실존적인 사건이에요.
하느님께서는 내가 겪는 고통의 시간을 결코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여주셨듯, 광야에서 굶주린 이들에게 만나를 내리셨듯, 하느님은 항상 인간의 막다른 길에서 새로운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 심지어 죽음조차도 하느님 손에 들어가면 생명의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끝은 ‘하느님의 다음 단계’를 기다리는 설레는 멈춤의 신비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이 없듯, 인간적인 끝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신적인 시작을 체험할 수 없어요.
우리는 이 미사가 끝나면 각자의 삶이라는 ‘갈릴래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와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하지만 기억하고 싶습니다. 나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무덤을 비우고 나오신 주님께서 나보다 앞서 그곳에 가 계십니다. 내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그 자리, 가장 포기하고 싶은 그 자리가 바로 / 하느님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거룩한 지성소임을 믿으셔야만 합니다.
오늘 이 밤, 부활의 촛불을 가슴에 품고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선포합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으며, 인간의 끝은 하느님의 위대한 시작이라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지금 ‘끝’의 자리에 서 있는 여기 있는 우리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새로운 시작의 용기로 충만하기를 청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