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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 등록일
- 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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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주님 부활 대축일 (사도10,34ㄱ.37ㄴ-43 / 콜로3,1-4 / 요한 20,1-9)
[흉터는 빛이 통과하는 통로]
260405 금2
부활 축하드립니다!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활기를 느끼는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우리의 기대와 사뭇 다름을 알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는 기이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다시 살리셨다면, 십자가의 그 못자국은 말끔히 지워주실 것만 같은데, 아프고 힘들었던 과거의 상처를 없애 주실 법도 한데.
그러나 예수님은 손과 발의 못 자국, 옆구리에 창이 뚫고 지나간 그 거대한 흉터를 그대로 간직한 채 나타나셨어요. 제자들에게 당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분이 내미신 것은 빛나는 후광이 아니였습니다. 바로 그 지저분하고 아픈 상처였어요.
왜 부활하신 몸에 흉터가 남아 있어야 했을까요? 부활은 고통의 제거가 아니라 포용임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였습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흉터를 안고 살아가죠. 그것이 지독한 가난의 기억일 수도 있고,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한 갈라진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에 새겨진 피눈물 나는 낙인일 수도, 혹은 스스로를 증오하며 남긴 자해의 흔적일 수도 있어요.
우리는 이 상처들을 부끄러워합니다. 남들에게 보일까 봐 웃음으로 덮어버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지으며 가려버려요.
상처가 없는 상태를 '정상'이라 부르고, 흉터가 남은 삶을 '비정상', '실패'라 불리는 세상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아침, 성당에 와 있으면서도, 내 안의 상처를 주님께조차 보이지 않으려 마음무덤 깊숙한 곳에 숨겨두곤 해요. "내 삶은 여전히 이 모양 이꼴인데,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내면을 울게하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숨겨진 무덤의 돌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에 남은 선명한 못자국을 눈앞에 내미시죠. 그분은 우리에게 "상처 없는 완벽한 인간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요 “나도 너처럼 아파보았다. 보라, 이 흉터가 내가 너를 사랑하며 치러낸 치열함의 흔적이다.”
내가 입은 상처를 깊이 이해하고 통합한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진심으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그거에요. 그분의 흉터는 더 이상 고통이 흘러 나오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의심 많은 토마스의 손길을 받아내고, 겁에 질린 제자들을 안아주는 '사랑의 통로'가 되었어요.
내가 겪은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암 투병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이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의 손을 떨림 없이 잡아줄 수 있습니다. 자식을 잃고 밤새 울어본 부모가 상실의 아픔 속에 있는 이웃의 침묵을 견뎌줄 수 있어요. 실패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이 넘어진 청년에게 "괜찮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진실한 위로를 건넬 수 있습니다.
이때 내 흉터는 더 이상 수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에에요. 부활의 빛이 나의 흉터를 통과할 때, 그 상처는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합니다.
내가 아파봤기에 타인을 더 깊이 환대할 수 있다면, 나의 상처는 이미 부활의 신비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느라 닳아버린 손마디와 누군가를 위해 흘린 눈물 자국에서 당신 아들의 얼굴을 발견하세요.
부활은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아픈 기억들을 부활하신 주님의 빛 앞에 내어드리는 결단입니다. ‘주님, 제 삶은 이토록 찢기고 상처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 상처를 통해 당신의 일을 해주십시오’ 이 고백의 순간, 부활은 내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그러셨듯이 말이죠.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내 몸과 마음의 흉터는 그대로 남아 있을겁니다. 하지만 이제 그 흉터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것은 부끄러워 감추고픈 기억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사랑하며 버텨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랑의 흔적입니다.
아픈 과거를 억지로 지우려 하지 마세요. 그 아픔을 부끄러워하지도 마세요. 대신 그 흉터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스스로에게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이 상처가 있었기에 나는 더 깊은 사람이 되었고,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상처 입은 채로, 그리고 기쁘게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여전히 아픈 몸을 가졌고,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죠. 하지만 내 곁에는 나보다 더 큰 상처를 지니신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생명의 꽃을 피워내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진짜 '부활의 증거'입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서 나의 눈물 속에, 그리고 나의 흉터 속에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