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주보성인
성 남종삼 요한(1817-1866)
시대를 통찰한 지식인, 신앙으로 순교한 평신도 지도자
남종삼(南鍾三, 1817~186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며, 병인박해 때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 평신도 지도자이다. 세례명은 요한(John)이다. 그는 뛰어난 학문과 정치적 식견으로 조정에서 활동하였으며,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의 앞날을 고민한 지식인이었다.
19세기 중엽 조선은 서양 세력의 접근과 내부 사회 변동이라는 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남종삼은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단순한 쇄국과 배척만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서양 세력 간의 관계를 활용하여 외세의 침략을 견제하려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방책을 주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개방적 시각과 천주교 신앙은 대원군 정권 아래에서 경계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남종삼은 신앙 안에서도 깊은 학문적 열정을 보였다. 그가 남긴 《천주가사》는 천주교 교리를 우리말 가사의 형식으로 풀어낸 초기 신앙 문학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백성들도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조선 사회 안에서 신앙을 토착화하려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천주가사》에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 인간 구원에 대한 희망, 순교 정신이 담겨 있으며, 당시 신앙 공동체의 삶과 정서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남종삼의 신앙은 한 개인에 머물지 않고 가족 전체로 이어졌다. 그의 아버지 남상교(아우구스티노-공주에서 옥사)는 자녀들에게 깊은 신앙심을 전하였으며, 아내 이조이(필로메나-창녕에서 치명) 또한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킨 독실한 신자였다.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가족들은 체포와 감시, 유배와 고문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인 남명희 역시 초록바위 순교지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져, 남종삼 가문은 한국 천주교 역사 안에서 ‘순교 가문’으로 기억되고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남종삼은 체포되어 혹독한 심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순교로 생을 마감하였고, 한국 교회는 그의 죽음을 신앙과 양심을 위한 증언으로 기억하였다. 이후 그는 1925년 시복되었으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성되었다.
남종삼 요한 성인은 시대를 읽었던 정치가이자 백성을 위한 지식인이었으며, 동시에 끝까지 믿음을 지켜낸 순교자였다. 그의 삶은 오늘날에도 신앙과 양심, 그리고 시대적 책임에 대해 깊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