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성인

축일 7월 5일

신분 사제,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

활동연도 1821년~1846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충청도 솔뫼의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와 굳센 신심을 지니셨던 신부님은 15세 때인 1836년 모방신부님에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최양업(崔良業) 최방제(崔方濟)와 함께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로 유학의 길을 떠나셨습니다.

 

수학중이던 1842년 조선교구 제2대교구장 페레올주교님의 지시에 의해 조선으로 들어갈 잠입로를 개척하고자 남만주를 거쳐 함경도 땅에 잠입하였으나 여의치 못하여 다시 만주로 돌아가셨습니다. 1844년 부제(副祭) 서품을 받으시고, 이듬해 1월 단신으로 입국에 성공, 박해로 타격을 입은 교회를 수습하고 8월에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 페레올주교님의 집전하에 사제서품을 받음으로써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 뒤 조선에 입국하여 용인지방을 중심으로 교우들을 방문하는 등 활발한 전교활동을 펼치셨습니다.

 

184665일 체포되어 수차례의 문초와 고문을 당하셨으며, 서울로 옮겨져 염사지죄반국지율(染邪之罪反國之律)이라는 죄로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셨습니다. 신부님의 시신은 40일 뒤 미리내에 안장되었고, 1901년 용산신학교로 이장되었다가, 혜화동 대신학교 성당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19257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시복되셨고, 1949년에는 한국성직자들의 수호자로 교황 비오 12세께서 선언하셨습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시성되셨습니다.

 

한국성직자들의 수호자이자 수선탁덕(首先鐸德)이신 김대건 신부님은 비록 1년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 활동하셨지만, 그동안 방인사제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입증하여 조선교구의 부교구장이 되었고 투철한 신앙과 신념으로 성직자로서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을 향한 굳센 믿음과 순교의 불타는 열정으로, 하느님나라 실현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본받고자 우리 의정부교구는 수호성인으로 김대건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