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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특강 2차 20260318
- 등록일
- 202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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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사순특강 2차 2026.03.18.
일시 : 3.18일 (수) 19시30분
강사 : 최대환 세례자 요한
주제 : 영원의 거울 아래서
■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요한 16,13
( 지금은 희미하게 살지만, 우리는 결국 하느님의 진리를 향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1. 우리는 지금 ‘안경이 흐린 상태’입니다
안경에 김이 서리면 잘 안 보이듯이 우리 마음도 욕심과 걱정이 많으면
세상이 제대로 안 보입니다
2. 그래도 사람 마음에는 ‘좋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착하게 살고 싶고, 바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하느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3. 그래서 필요한 것이 ‘비움’입니다.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물을 담을 수 없듯이
마음도
욕심, 화, 미움이 가득하면
하느님이 들어오실 자리가 없습니다
4. 신앙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해를 바라보면 따뜻해지듯이
하느님을 바라보며 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밝아집니다
5. 5. 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물건을 찾을 때 집 안에 있으면서 밖에서 찾는 경우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이미 모시고 있으면서
밖에서만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 우리는 지금 조금 흐릿하게 살고 있지만
-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면
- 하느님이 점점 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묵상
“주님,
제 마음을 비우게 해 주십시오.
가득 찬 욕심을 내려놓고
주님으로 채워지게 하소서.
그래서 흐릿한 삶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게 하소서.”
글.사진 : 홍보문화분과 커룹팀
원문제공: 교육분과장
( 원문 )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요한 16,13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코린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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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354-430)
당신께서는 진리를 사랑하셨고 진리를 행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진리를 행하고 싶습니다. - 『고백록』 X.1.1
행복한 삶은 진리를 두고 기뻐함입니다. (...)
속기 싫어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진리를 사랑하고 있으며, 행복한 삶을 사랑할 적에는 진리 또한 사랑하는 것이고, 그들의 기억 속에 진리에 대한 어떤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면야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진리에서 기쁨을 얻어내지 않는 것입니까? 사람들이 왜 행복하지 못합니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희미하게나마 기억을 하고 있는 그것보다 아마도 사람을 차라리 불행하게 만드는 다른 것들에다 더 마음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사람들 속에는 아직도 약간의 빛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둠이 덮치지 않게 걷고 또 걸어야 합니다. - 『고백록』 X.23.33
영원에서는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고 전체로서 현전합니다. 어느 시간도 전체로서 현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과거는 미래에 의해서 밀려나고 모든 미래는 과거에 의해서 뒤쫓기며, 모든 과거와 미래는 항상 현재하는 것에 의해서 조성되고 전개된다는 사실을 누가 알아보게 하겠습니까? 누가 인간의 마음을 붙들어 세워 멈춰 서서 바라보게 만들고, 영원이 어떻게 정지한 채로 미래 시간과 과거 시간을 결정하는지, 그러면서도 영원 자체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님을 바라보게 만들겠습니까? - 『고백록』 XI.11.13
주 하느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저희에게 모든 것을 베푸셨으니 침묵의 평화, 안식일의 평화, 저녁 없는 평화를 주십시오. - 『고백록』 XIII.35.50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일하시고 언제나 쉬십니다. 당신께서는 시간으로 보시거나 시간으로 움직이지거나 시간으로 쉬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당신께서는 시간적인 관측을 만드시고 시간 자체를 만드시고 시간에서 기인하는 안식을 만들어 주십니다.
- 『고백록』 XIII.37.52
토마스 아퀴나스 (1224/1225-1274)
네 가지가 일정한 순서로 관상 생활에 속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 첫째는 윤리덕들이고,
둘째는 관상 이전의 다른 행위들이며,
셋째는 하느님이 하신 일들에 대한 관상이고,
넷째는 신적 진리들의 관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
인간 지성의 최종적 완성은 신적 진리에 있다. 다른 진리들은 신적 진리를 지향하는 한에서 지성을 완전하게 한다.
주님은 루카복음서 10장 42절에서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레고리우스가 <에제키엘서 강해>에서 말해듯이 “관상은 이 세상에서 시작되고, 천상 본향에서 완성된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관상 생활은 지속된다. 관상은 영혼에서 소멸되지 않는 부분인 지성의 작용에 따라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어서 현세의 삶이 끝난 다음에도 지속될 수 있다.
우리가 관상하는 방식은 이 세상과 본향에서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관상 생활은 지속되는데, 이는 관상의 시작이며 마침인 참사랑 때문이다. 그래서 그레고리우스는 <에제키엘서 강해>에서 “관상 생활은 이 세상에서 시작되고, 천상 본향에서 완성된다. 이 세상에서 타오르기 시작하는 사랑의 불은, 사랑하는 분을 뵙게 될 때 그분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불붙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II-II.q180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1260-1329)
“올바른 ‘버리고 떠나있음’은, 마치 납으로 된 산이 약한 바람에는 까딱하지 않고, 확고부동하게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이 모든 엄습하는 사랑과 고통, 명예, 손실, 모욕 등에 대항하여 확고부동하게 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
‘버리고 떠나 있음’은 인간을 순수성으로 이끌어가며, 또한 순수성에서 단순성으로, 단순성으로부터 불변성으로 이끌어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버리고 떠나 있음’은 신과 인간 사이의 동일성을 산출한다. 하지만 이러한 동일성은 은총 가운데 발생한다. 왜냐하면, 은총은 우리를 모든 시간적 사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모든 소멸하는 사물들로부터 우리를 순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들은 다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당신들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비어 있는 것은 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고, 또한 모든 피조물로부터 가득 차 있는 것은 신으로부터 비어 있는 것이라는 것을. - 「버리고 떠나 있음에 대하여」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1304-1374)
나는 긴 침묵 속에 성찰에 빠져들어갔습니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스스로의 가장 고귀한 부분을 소홀히 하여 여러 가지 일에 신경으르 쓰고, 헛된 생각에 넋을 잃어 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을 밖에서 구하고 있다고, 동시에 나에게는 찬탄하는 마음도 솟아올랐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만약 스스로 타락해 자신의 본모습을 저버리고, 신이 명예롭게 내려주신 것을 바꾸어 오역스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면 그 고귀함은 오죽할까라고.
이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몇 번이 나 고개를 돌려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던 것일까요!
인간의 명상이 만약 지상의 추악한 진흙 속에 빠질 일이 없다면, 그 명상의 높이에 비교하여 저 산의 높이는 내 팔의 길이만큼도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걷는 한걸음마다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을 조금이라도 하늘에 가까이 하기 위해서조차 이 정도의 땀과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커져가는 오만의 꼭대기를 딛고 죽을 인간의 운명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주님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영혼에게 있어서야 어떤 십자가나 감옥이나 고문이 두렵겠는가?
- 「방투산 등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