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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님 말씀] 2024 성모 승천 대축일 교구장 메시지

등록일
202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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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회심(回心)을 기원하면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여러분 마음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성모님도 그 기쁨을 누리셨습니다. 그분은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시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이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루카 1,47)라고 노래하셨습니다.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8월 15일은 매우 기쁜 날입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중요한 두 사건을 기념하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는 우리나라가 35년간의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광복절이라고 부르면서 해방의 기쁨과 의미를 되새깁니다. 다른 하나는 성모 승천입니다. 이날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 계획에 순종하며 겸손하게 사셨던 성모님을 하늘에 불러올려 영광스럽게 하신 구원 사건을 기념하면서 기뻐합니다.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들은 이 두 사건을 연결해서 생각합니다.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에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구원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은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시는 분’(루카 4,18)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구원의 하느님을 이집트 탈출 사건에서 체험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이집트에서 파라오에게 억압과 착취를 당하면서 신음하고 호소하는 목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시어 그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파라오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행해지는 기적들을 보면서도 고집을 부리며 이스라엘 백성을 붙잡아 두려고 했지만, 맏이가 모두 죽는 일이 일어나자 결국 승복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심으로써(루카 1,51)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펴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날은 마치 우리의 광복절 같은 날로서 그들은 매해 그때가 되면 파스카 축제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 해방절 축제는 자기 조상들을 괴롭혔던 이집트에 대한 원망과 미움보다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조상들을 구해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면서 아울러 그런 능력의 하느님께 자신들의 미래를 맡겨드리는 믿음의 축제였던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매 주일 신약의 파스카 축제인 미사에 참례합니다. 그런 만큼 우리 역시 파스카 축제의 정신으로 광복절을 지내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도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데에 인색한 일본에 대해 밉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더라도 거기에 머물지는 맙시다. 그보다는 성모님의 전구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 덕분에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 그리고 그런 능력의 하느님께서 앞으로도 계속 우리를 돌보아 주시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굳건히 다지는 날로 지내도록 합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에게 시련을 주었던 이집트를 포함하여 다른 민족들도 미래 언젠가는 하느님을 알아 공경하기를 기대하고 희망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성모님의 전구로써 하느님께서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일본은 물론 북한을 포함한 전 세계의 통치자들이 ‘회심’하기를, 그래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억압하고 침공하는 잘못에서 돌아서서 함께 평화롭게 사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자신도 회심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이 저지르는 잘못, 곧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억압하는 잘못’은 바로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억압하는 잘못’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평화는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로서, 그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회심이 필요합니다. 회심한 사람은 성모님처럼 자기 뜻과 계획보다는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나’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다른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함께 걸어가려고 노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실 것”(루카 1,79)입니다. 지상 생활을 마치고 천상 영광에 이르신 성모님은 아직 천상을 향한 순례 여정에 있는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열렬히 전구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회심하여 참된 평화의 길을 걷다가 마침내 성모님처럼 하늘의 영광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기로 합시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