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나무그늘 11월]우리의 도움을 기다리는 연옥 영혼들

등록일
2024-11-04
조회
42
파일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약간은 들뜨면서 설레는 기분 좋은 분위기입니다. 저도 9월 어느 날 한국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을 위해 로마로 가려고 들른 인천 공항 출국장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나라를 향한 마지막 여행을 앞두고도 그런 기분이면 얼마나 좋을까?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천당에 있는 내 부모, 형제, 친지들을 반갑게 만날 때를 기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고 구원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며 구원이 완성되는 하늘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을 걷는 나그네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사랑 자체인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역시 온전한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순도 100%의 사랑인 하느님과 하나가 되려면 우리도 순도 100%의 사랑으로 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랑을 키워갈수록 사랑 자체인 하느님과의 일치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됩니다. 그 일치를 위해서는 우리 안에서 사랑과 반대되는 것, 곧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마르 7,23) 등을 다 없애버려야 합니다. 사랑과 반대되는 것을 털어내고 씻어내는 일을 보속(補贖)이라고 합니다. 보속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 죄는 용서 받더라도 그 죄가 남긴 얼룩을 지우고 더러움을 없애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보속을 다 못했으면 죽은 다음에라도 해야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죽은 후에 우리 안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방해하는 ‘불순물’을 걸러내는 ‘정화(淨化)’ 과정이 있다고 가르치는데, 그것이 바로 연옥입니다. 이 과정에는 부끄러움과 고통이 따라옵니다. 사랑이 부족해서, 사랑을 거슬러서 생긴 허물과 죄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희망도 수반됩니다. 정화 과정이 끝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후의 정화는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는 지상과 천상 그리고 연옥에 있는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결합되어 있어서 기도와 희생, 선행으로 서로 도울 수 있다는 믿음, 곧 ‘성인(聖人)들의 통공(通功)’이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마르 12,29-31). 따라서 나의 구원만을 골똘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웃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이웃에는 죽은 이들도 포함됩니다. 11월 위령성월 동안 기도와 희생, 선행으로 연옥 영혼들을 열심히 돕도록 합시다. 우리의 도움을 받고 연옥에서 천국으로 들어간 이들은 지상에서 나그넷길을 걷고 있는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열심히 전구해 줄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을 향한 여행을 안심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