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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님 말씀] 주님 만찬 미사_20250417

등록일
20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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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젊은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요? 어린 자식이 염려되고 걱정되어서 차마 눈을 감지 못하겠지요. 아마도 자식의 장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눈앞에 두시고 같은 심정으로 제자들을 바라보셨을 듯합니다.


평소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많이 사랑하셨지만, 그들과의 이별을 앞두고는 더욱 큰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방금 들은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2) 이 극진한 사랑의 표현이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파스카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거행하십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세상 끝 날까지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어머니의 헌신적 사랑이 담긴 음식과 음료가 육신 생명에 힘이 되듯이, 예수님의 헌신적 사랑이 담긴 성체와 성혈은 영적 생명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엔진에서 나오는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듯이 교회는 성체성사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심장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제2 독서에서 드러나듯이 그 시작부터 성체성사를 거행해 왔습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에 대한 당신의 극진한 사랑을 또 다른 방법으로 각인시켜 주십니다. 열두 사도의 발을 씻겨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팔레스티나는 더운 지역이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맨발에 샌들을 신고 다녔습니다. 덥고 건조한 지역이라서 먼지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손님이 오면 손님 대접으로 종이나 하인이 그 손님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남의 발을 씻는 것은 종이나 하인들이 하는 비천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천한 일을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스승과 제자 관계에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연히 제자들은 몹시 당황하였고, 베드로 사도는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며 스승을 만류하기까지 합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황하게 여길 정도의 파격적인 행동을 하셨을까요? 필립피서 2장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2,6-8) 그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생애를 요약하는 행동으로써 마지막 가르침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잘나거나 똑똑하지도 않았습니다. 스승 곁에서 머물면서 스승과 함께 먹고 마시고 다녔지만, 스승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의 기대에 못 미칠 뿐만 아니라, 곧 당신을 등질 것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스승을 팔아넘길 마음을 품고 있었고, 베드로는 위기의 순간에 스승을 세 번 배반할 것이며, 다른 제자들도 스승을 버리고 도망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종처럼 자신을 낮추어 못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깨달음에 더딘 제자들에게 당신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마음 깊이 각인시켜 주시고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처럼 행동하기를, 서로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다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던 예수님은 이 자리에도 현존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다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 곧 교회 공동체 전체에 해당합니다.
교회가 신뢰받는 공동체가 되려면 교회 구성원 모두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최후 만찬에서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행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성체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이 더욱 분명하게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실제적인 권위가 뒷받침되지 않는 그 어떤 형식적, 관료적, 법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 시대는 권위를 행사할 때 일종의 겸손, 곧 내적으로는 봉사 정신 그리고 외적으로는 겸양을 요구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이권을 차지하려고 거친 말, 거짓말, 거북한 말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없이, 티 내지 않고, 진정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이들을 갈구합니다. 사람들은, 공직자들에게 특별히 성직자들에게 이런 점을 간절하게 바랍니다. 우리 사제들이 이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서, 예수님이 모범으로 보여주신 겸손한 섬김의 길을 기쁘게, 힘차게 갈 수 있도록 신자들은 기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4. 예수님은 적대자들에게 둘러싸여 수난과 죽음을 앞둔 암울한 상황에서, 제자들마저 배신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참담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성부의 뜻에 따라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어둠이 깊어지는 상황에서도 어둡다고 불평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등불 하나를 밝히신 것입니다.


저는 독일 태생의 유다인 수녀 에디트 슈타인 성녀의 말을 자주 생각합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킨 나치의 포악함이 유럽 사회 전체를 먹구름처럼 드리우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손아귀가 좁혀오는 짙은 어둠의 상황에서 성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주변이 어두워지면 질수록 우리는 위로부터의 빛에 우리 마음을 열어야만 합니다.” 성녀의 말대로, 우리 주변의 어두움이 짙어진다고 여겨질수록 예수님께로 눈길을 돌리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예수님은 미사성제에 현존하십니다. 그분은 미사 때마다 성체를 통해 당신의 헌신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그 큰 사랑에 힘입으면, 우리도 이웃에게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사랑이 겨자씨처럼 작다고 해도 하느님께서는 그것으로 세상의 변화라는 큰 결실을 거두실 것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을 닮아서 우리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본당에서 서로 섬기는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