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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늘 6월호 주교님 말씀]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등록일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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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8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 유학 시절에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어느 양로원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많이 생겼지만 40년 전에는 그런 시설이 거의 없어서 제게는 매우 낯선 곳이었습니다.

 

선진국에 걸맞게 양로원에는 모든 시설이 손색없이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얼굴은 항상 침울하고 웃음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 양로원에 있던 사람들은 가족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식은 물론 배우자가 있어도 그곳에 와서 사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분들에게 유일한 기쁨은 가족들이 찾아주는 것이었고, 가족들이 면회하고 돌아가면 다시 침울해졌습니다. 육신의 배를 채워주는 빵은 넘쳐났지만,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는 사랑의 빵이 부족했기에 어르신들은 늘 어둡고 우울한 표정을 지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음식과 편리한 시설만이 아니라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라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더 데레사 성녀는 현대인에게 가장 큰 질병은 암이나 에이즈가 아니라 자신이 정신적으로 헐벗고 있다는 느낌,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현대 세계는 육신의 굶주림보다는 마음과 영혼의 굶주림이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마음과 영혼의 허기를 빵으로 달래려고 먹고 또 먹어서 비만에 걸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내적인 허기를 채우려고 불량식품과 같은 유사 영성에 빠져서 자신을 병들게 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예수님을 진정한 생명의 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제시해 주지 못한 교회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 6,4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빵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고, 생기와 활력을 주는 영혼의 양식, “생명의 빵”(요한 6,48)입니다. 그분을 진정으로 믿게 되면 마음과 영혼의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으면, 자신을 송두리째 내놓는 그분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마음과 영혼의 허기를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무엇보다도 성체성사를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수님을 생명의 빵으로 세상에 선포해야 할 사명이 큽니다. 그 사명을 수행하려면 우리 각자가 먼저 그분이 생명을 주는 빵임을 깨닫고 그 빵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야 합니다. 말로만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것으로 배를 채우려고 한다면, 누가 우리를 믿겠습니까? 우리 각자 예수님을 진정 생명의 빵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이 당부하신 대로 우리 자신이 생명의 빵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힘과 활력을 주면 좋겠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루카 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