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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그늘 7월호 주교님 말씀] 시련의 의미

등록일
202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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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휴가가 있어 좋지만, 무더위와 호우로 인한 불편함도 큽니다. 열대야나 장맛비에 시달리다 보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가 일 년 내내 계속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맑은 날만 계속된다고 해서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정호승 시인은 몽골 남부에 있는 고비 사막을 다녀와서 이런 상상을 했다고 합니다.

 

"고비는 비가 많이 오는 곳이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고비는 신께 햇볕을 내리쬐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신은 고비의 간청을 들어주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것은 다시는 비가 오게 해달라고 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고비는 햇볕이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그 조건을 수락했습니다.
신은 고비에게 햇볕을 내려주었습니다. 고비엔 차츰 물이 말라가 살기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자, 고비는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처럼 비가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고비는 비가 오게 해달라고 할 수 없다는 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고비엔 계속 햇볕만 내리쬐었습니다. 결국 고비는 사막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삶에도 나날이 햇볕만 든다면, 매일 즐거움과 기쁨만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혹시 고비 사막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아서 괴로움이 크다면, 그것은 내가 사막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하느님이 비를 내려주신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불가에서는 인생은 고해(苦海), 곧 고통의 바다라고 할 정도로 우리 인생 여정에는 고통과 시련이 깔려있습니다. ‘살베 레지나’(Salve Regina)라는 성모 찬송에서도 세상을 ‘눈물의 골짜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상에서 고통과 시련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에 따라 고통과 시련으로 부서질 수도 있고, 정신적·영적으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작가 엘리사벳 퀴블러 로스(1926~2004)는 인간의 죽음에 관한 연구로 저명인사가 되었는데, 1995년에 5월 뇌졸중에 걸립니다. 신체의 일부가 마비된 채로 2004년 8월 24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우 힘겹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병고의 기간을 통해서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좀 더 깊이 깨닫고 이런 글을 남깁니다.


"시련을 겪는다는 것은 바닷가에 깔린 자갈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여기저기 다치고 멍이 들지만, 전보다 더 윤이 나고 값지게 됩니다. 당신은 이제 훨씬 더 큰 배움, 더 큰 도전, 더 큰 삶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악몽은 언젠가는 삶의 일부인 축복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폭풍우를 막았다면 비바람으로 생긴 그랜드 캐니언 같은 장관은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햇볕만이 아니라 비가 내리기에 농작물이 자라고 과실이 영글어갑니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고통과 시련을 통해 좀 더 성숙하고 철든 사람으로 변화되면 좋겠습니다. 진주조개가 자신에게 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영롱한 진주를 만들어내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