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22년 의정부교구장 주님 성탄 대축일 메시지

등록일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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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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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용기를 내어라. 주 너의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겠다”(여호 1,9).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강생하신 아기 예수님께 찬미를 드리며 의정부교구 형제자매님들의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3년에 가까운 코로나 기간을 보내며 큰 어려움을 감내하신 여러분에게 이번 성탄이 더욱 큰 기쁨의 축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합시다.

 

기쁨과 희망을 주러 오신 주님

금년 한해 전 세계와 우리 사회는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었고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러시아에 의해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10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는 최근 몇 달 사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고 있고, 미?중 관계의 악화를 비롯해 긴장이 고조되는 주변 정세로 불안감은 커졌습니다. 국내외 경제 상황은 어려워져서 많은 국민, 특히 젊은 세대의 고통이 늘어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도 믿기지 않는 이태원 참사는 큰 슬픔에 잠기게 하였습니다. 대결로만 치닫는 정쟁으로 국민의 고통은 외면받고 있으며,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은 실망스럽고 허탈할 뿐입니다.

이러한 시대이기에 우리는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더욱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구세주 오실 것을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온 이사야의 노래가 마음에 다가옵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이사 35,1-2).

마치 광야와 사막이 우리 마음이자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처럼 느껴지기에, 즐거워하고 꽃을 피우며 환성 올리는 날을 고대하였습니다. 이제 이 땅에 오시는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과 이 사회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새로 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 자체이신 분입니다. 혼탁한 세상이기에, 그 희망과 위로는 더욱 밝고 찬란히 빛을 냅니다.

그런데 구세주의 빛과 찬란함이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 누인 약한 아기의 모습을 통해 드러났다니 참으로 엄청난 역설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은총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약한 이와 같아지신 모습, 아니 그보다 더 나약한 모습으로 누워계신 모습이 그분께서 보여주시는 위로의 방식이었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행복의 길을 알려주신 산상수훈의 “참행복”(마태 5,1-12 참조)에서 그 의미는 더욱 명확해집니다. 참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유함만을 추구할 게 아니라 가난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는 혼란한 시대를 겪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줍니다. 높은 데가 아닌 낮은 곳, 화려함이 아닌 소박함, 무분별한 외침이 아닌 겸손한 침묵. 바로 이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주님께서는 구유에 고요히 누우신 모습으로 말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나약한 모습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알려주셨고,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며 영원한 행복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야 할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성탄을 맞이한 그리스도인이 나가야 할 길

우리의 시야를 흩트리고 하느님과 이웃 대신 자신에게만 향하게 하는 혼란한 시대에 신앙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최근 개봉한 영화 <탄생>을 관람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생애를 다룬 이 영화로 보고서 신부님의 서한들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나는 절대로 내 천주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내 교(敎)의 진리를 듣고 싶으면 들어 보시오. 내가 공경하는 천주는 천지 신인 만물의 조물주이시고 상선벌악 하시는 분이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에게 공경을 드려야 하오. 관장님, 천주님의 사랑을 위해 고문을 받게 해준 데 감사하오”(스무 번째 서한 중).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모진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증거하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우리 역시 그분처럼 천주교 신자임을 말과 행동으로 증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인임을 감추지 말아야 할 것은 물론, 우리의 모습이 이웃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어려운 이웃을 환대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변 이웃을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아닌, 나와 함께 살도록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존재로 생각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주변 이웃에게 다가가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선교하는 작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작은 교회가 모여 하나를 이루는 신앙 공동체라면, ‘또 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서 어두운 이 시대에 성탄의 빛을 널리 밝히는 주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끝으로, 여호수아기의 말씀으로 성탄 인사를 드립니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 주 너의 하느님이 너와 함께 있겠다”(1,9). 서로 일치하여 하나 된 공동체로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의정부교구 모든 형제자매님에게 주님의 은총이 충만히 내리기를 빕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가정에 성탄의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2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베드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