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메시지&서한]2025년 주님 부활 대축일 교구장 메시지
- 등록일
- 202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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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 20,19)
알렐루야!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의 어둠을 물리치시고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요한 1,9)으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그 빛이 우리 각자와 우리 가정과 온 세상에 두루 비치기를 기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주님은 수난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바로 그 평화를 주신 것입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을 보면, 어느 때보다도 주님의 평화를 간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큰 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던 정치적 위기는 한고비 넘겼지만, 마음의 통합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또한 지속되는 경기 침체와 요동치는 국제 정세는 우리에게 큰 불안을 안겨 줍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는 두려움을 일으키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향한 우리의 길을 막고 있는 큰 돌과 같습니다. 그 돌은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막았던 큰 돌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의 무덤 입구를 막아놓은 큰 돌은 그분을 반대하던 이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시면서 흩어진 하느님의 백성을 모으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요한 3,19 참조)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곧 그들과 예수님 사이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한 두 형태의 사랑이 충돌했던 것입니다.
“세계 역사는 자기 사랑과 타인 사랑이라고 하는 두 가지 사랑 간의 싸움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세상 파괴에까지 이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은 자아 포기에까지 이르게 한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집착하면서 자기편만 감싸는 ‘닫힌 사랑’으로 병든 이 세상을 ‘열린 사랑’ 곧 자기를 넘어서서 자기희생에 이르는 참된 사랑으로 치유하고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그분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된 듯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신명 21,23)라는 구약성경 구절에 비추어볼 때, 예수님은 하느님께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예수님의 부활로 뒤집히게 됩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부활시켜서 당신 아드님이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 덕분에 제자들은 그분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으로 믿으면서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사도 2,42-47 참조).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내어놓는 참된 사랑을 실천하셨고, 하느님은 그런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시어 평화의 원천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대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
우리의 적대심마저 뛰어넘는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그분처럼 자기희생의 사랑을 실천할 때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이기심의 큰 돌’을 치워야 합니다. 내 생각과 경험이 전부라고 우기면서 다른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선과 아집의 돌, 나눌 줄 모르고 모으려고만 하는 탐욕의 돌, 나만 잘 되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무관심의 돌, 자기 책임은 외면하고 남 탓만으로 일관하는 비겁함의 돌이 사라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승처럼 참된 사랑을 실천하면서 평화와 기쁨을 전하는 그분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 역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변화되면 세상도 조금씩 변화됩니다. 세상의 변화는 나에게서 시작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에 힘입어서 내 안에 있는 ‘이기심의 큰 돌’을 치워버립시다. 참빛이신 주님께서 내 마음에서 어둠을 몰아내시고 사랑의 빛으로 가득 채워주시기를 간청합시다. 우리 모두 제자들처럼 변화되어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기쁘게 세상에 전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저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시오!
평화의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물러 주십시오!
2025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의정부 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