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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신부와 함께하는 대중 음악 이야기 10 -내 사람이여(김광석)

등록일
2020-03-22
조회
1040

앙 신부와 함께하는 대중 음악 이야기 10

 

그리운 마음으로 용기 내어 시작한 첫 발걸음이, 어느덧 마지막 순간에 다다랐습니다. 강론이 공영 방송이었다면, 이 글들은 케이블 방송이었던 것 같아요. 날 것 그대로의 제 모습으로, 제 말투와 마음으로 써 내려갔던 시간들이라, 저에게는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느껴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서로를 위로했던 시간이었기를 희망해봅니다.

 

, 이제 마지막 가수가 등장할 때가 되었습니다. 꾸준히 함께 글을 읽으셨던 분들은, 아마 마지막 가수를 예상하고 계셨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드네요. 나와야 할 분이 아직 안 나왔기 때문이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면, 모든 음악의 이야기의 끝은 이 분으로 통한다죠. 내 바로 그분입니다. ‘광석이형이예요.

 

몇 해 전, 흥미로운 음악 평론가의 글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 카니발로 소개드렸던 김동률김광석을 비교하며 쓴 글이더군요. 대체 불가한 두 가수를 비교하는 글을 쓰면서, 그 평론가가 아티스트를 대하는 태도는, ‘존경감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교 내용의 골자는, 김동률은 버클리 음대 출신으로 고급진 화성악과 목소리로 대변되는 귀족적인 음악의 귀재라면, 김광석은 그야말로 인간사를 두루 읊어낸 서민적인 음악이라는 비교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끝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죠.

 

하지만 대중은 김동률을 형이라 부르지 않지만, 김광석은 언제나 시대를 거슬러 광석이형으로 불린다.”

 

저도 광석이형김광석씨라고 불러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들어본 적도 없네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 같은 시대를 살지도 않은 사람,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사람. 그런데 김광석은 여전히 우리에게 광석이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광석의 음악 역시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여러분 안에 광석이형이 자리 잡고 있을 텐데요. 다만, 제가 들은 이야기 중 이마를 탁 치며 공감한 이야기와 제 체험을 좀 소개 할까 합니다.

 

어떤 음악 평론가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죄송합니다. 전문가가 아닌지라 평론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디테일이 좀 떨어집니다.^^;) “김광석의 음악은 인간의 삶에 중요한 자리들을 거친다.” 군 입대 시절(이등병의 편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서른 즈음에) 인생 느지막의 사랑(어느 60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 사랑에 관해서도,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과 사랑을 하는 시간들, 그리고 사랑이 떠나간 자리들에 대한 노래를 읊습니다. 이 외에 우리 인간사에 중요한 많은 순간을 노래한 김광석이기에, 사람들은 각자가 그 순간들을 살아갈 때마다 김광석의 노래를 듣게 된다고 하더군요. 너무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습니다.

 

단순히 인간사에 중요한 순간을 노래한다고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은 아니죠. “서른 즈음에를 작사 작곡한 강승원씨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노래를 만들어 김광석에게 주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어보니, 이 노래의 제목을 오십 즈음에혹은 육십 즈음에정도로 했어야 했다.”

 

서른 즈음에 가사를 되돌아보면, 그 곡에 담긴 삶의 깊이가 엄청 나기에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죠.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노래를 불렀을 때의 광석이형이 몇 살이었는지 아십니까? 겨우 30살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보다도 한창 동생이었을 때입니다.^^;) 30살이라는 나이에, 삶을 꿰뚫는 공감력으로 노래해, 자신의 나이를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공감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단순히 노래만 잘한다고 해서 이런 공감력이 나오지 않겠죠. 그래서 저는 광석이형이 걸어왔던 삶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궁금하고 그립습니다.

 

광석이형은 제 삶의 중요한 순간에도 다녀가셨습니다. 신학교 입학하기 전에 저는,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나?’ ‘하느님은 도대체 어떤 분인가?’라는, ‘대답 없는 질문들에 머리 빠져가며 고민했었습니다. 그 순간들이 참으로 괴롭지만 값진 시간들이었고, 그 시간이 마무리 되어 신학교를 가겠다고 다짐할 무렵, 광석이형의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곡은 바로 내 사람이여입니다. 일단 노래 한 번 듣고 가실까요?

 

내 사람이여

김광석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줄 수 있다면

빛 하나 가진 작은 별이 되어도 좋겠네

너 가는 길마다 함께 다니며

너의 길을 비추겠네

 

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다면

이름 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

음 눈물이 고인 너의 눈 속에

슬픈 춤으로 흔들리겠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내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주고 싶네

 

내가 너의 사랑이 될 수 있다면

노래 고운 한 마리 새가 되어도 좋겠네

너의 새벽을 날아다니며

내 가진 시를 들려 주겠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이토록 더운 사랑 하나로

내 가슴에 묻히고 싶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내 삶의 끝자리를 지키고 싶네

 

내 사람이여 내 사람이여

너무 멀리 서있는 내 사람이여

 

신학교 입학 전, 당시 본당 부주임 류동렬 펠릭스 신부님과 함께 기타치며 이 노래를 얼마나 불렀던가요. (지금은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렬이형이죠.ㅋㅋ)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 흘렸던 것은, 제가 가진 마음의 지향, 광석이형이 바라보아주고 함께 걸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때 동렬이형이 노래 부르다 말고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지요. 노래 가사 중에 내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주고 싶네.’라는 구절을 이야기하면서, 노래 가사가 이 맞을까?’이 맞을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동렬이형이 살이 맞다고 우겨서 노래 가사를 찾아보았지요. 정답은 동렬이형의 말대로 이었습니다.

 

저는 광석이형이 자신의 삶에 대한 노래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바친다는 내용이라고 생각했기에,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렬이형이 이것은 예수님의 살 사륵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실 때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 여러분이 아멘하고 대답하시죠. 그 때 은 원문으로 사륵스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육화해서 인간으로 오셨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사륵스는 단순히 살이 아니라, 가장 하급의 고깃 덩어리를 표현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을 때, 가장 비천하고 낮은 모습인 고깃 덩어리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표현하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받은 충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나서 찾아보니,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백창우 씨가 개신교 신자분이시더군요. 단어 하나의 차이가 이 노래에 대한 느낌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광석이형은 이 노래를 통해,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 주고 싶고, 누군가의 아픔을 만져주고 싶고, 누군가의 사랑이 되고 싶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아니라 빛 하나만 가진 별이 되더라도, 이름 없는 꽃이 되더라도, 날아다니는 한 마리가 새가 되더라도 좋겠다고 합니다.

 

들으면 전율이 오는 이 아름다운 꿈들이, 현실에서는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요? 순수하고 착하게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은 왜 이리 힘들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이 삶들이 왜 용기를 내어야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된 것일까요?

 

세상은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채우라 유혹합니다. 하지만, 그 누군가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기 위해 종내 자신을 비우고 비워냅니다. 세상을 거스르는 삶인 것이죠.

 

이 노래를 듣고 울었던 그때의 감정을 떠올려보면 참 복잡합니다. 이 가사와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가슴속 뜨거움과, 현실의 냉혹함에서 오는 괴리감, 내 자신이 이렇게 살아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저를 뒤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온전하지 못한 저의 가슴을 붙든 것은, 결국 하느님신부님그리고 광석이형이었죠. 그래서 저도 신부가 된 것 같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언젠가 내가 이 노래를 신자분들 앞에서 부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입니다. 이 노래에 담긴 사랑의 깊이가 너무 크기에 주저합니다. 제가 살아가는 삶이 이 노랫말에 합당치 못함을 고백하기에, 저에게는 이상향입니다. 하지만 제 삶의 언젠가의 순간에서는, 이 노래를 담담하게 불러내고 싶다고 꿈을 꾸어 봅니다.

 

이렇게 10회로 나누었던 글들을 마무리 합니다. 첫 시작이 코로나 19’로 인해 생긴 그리움때문이었죠. 코로나 19는 우리의 삶의 패턴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달라진 삶의 패턴은, 우리의 일상 안에서 늘 곁에 있었던, 하느님, 이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이 소중함 가운데 우리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방법임을 공감합니다. 서로 몸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서로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더 깨닫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것, 서로의 몸은 떨어져 있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 가까이 있는 것, 달라진 삶의 패턴에서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시 만날 그날 까지 안녕히. 여러분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