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 강론

2021년 1월 2일 성모신심미사

등록일
202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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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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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기념하면서 문득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특별한 존재시지만 여느 사람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셨던 성모님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마도 너무나 특별한 상황에 있어서 그런지 평범했던 일상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울러 특별한 은총을 받았지만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갔던 성모님을 통해 일상이 은총임을 밝혀주셨다는 생각도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러분과 함께 평범한 여인이셨던 성모님을 그릴 수 있는 안토니오 벨로신부님의 글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와 다르지 않았던 성모 마리아의 삶을 상상해보면서 새로운 한 해에 대한 희망을 키우면 좋겠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4항은 성모님께서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사시는 동안 가정을 돌보며 일에 파묻혀 지내셨다.“고 말한다. 나는 평소 이 대목을 자주 대하면서도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깊은 감동에 사로잡혔다.

그렇다. 마리아는 높은 하늘에 사신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사셨다. 마리아의 생각은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구체적인 일상 가운데 활동하셨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환희 가득한 체험을 하게 하셨을지도 모르지만, 마리아는 여전히 이 땅을 발로 딛고 있었다. 마리아는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서도 인내롭게 가정을 꾸려간 평범한 아낙네였다.

 

어디 그뿐인가. 마리아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가까운 이웃과 똑같이 생활하셨다. 같은 우물물을 길어 마셨으며 같은 절구에서 밀을 빻았다. 또 같은 뜰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쐬기도 했다. 여느 사람들처럼 하루 종일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저녁이 되면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오곤 했다. 어느날 누군가 마리아, 흰머리가 늘어가네요.“하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마리아는 샘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곤 사라져 가는 젊음에 상심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리아 역시 우리처럼 가정을 돌보며 일에 파묻혀 지내셨다는 사실을 보면 마리아가 일에서 비롯되는 노고를 알고 계셨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고달픈 일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마리아 역시 건강, 경제, 인간관계, 변화와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마리아가 얼마나 자주 두통을 느끼며 빨래터에서 돌아왔는지, 요셉의 일터에 손님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며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무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올리브를 추수하여 기름을 짜는 계절에 예수의 일자리를 찾아 얼마나 많은 집 문을 두드렸을까? 이미 낡은 요셉의 외투를 뒤집어 아들에게 망토를 만들어 입히느라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을까?

 

여느 아낙네들처럼 마리아 역시 남편과의 관계에서 위기를 느낄 때도 있었으리라. 요셉이 천성적으로 과묵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마리아의 침묵을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리아는 다른 어머니처럼 십대를 벗어나 청년으로 성장하는 이들을 지켜보며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졌으리라.

 

또한 다른 여인과 마찬가지로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때로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서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괴로움을 겪었으리라. 어쩌면 그들을 실망시키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한없는 외로움으로 괴로워하며 눈물 흘리다 가족이 모여 함께 기도드릴 때 비로소 신비로운 친교를 나누며 기뻐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