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3월27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

등록일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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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강론.hwp

사순 제4주간 금요일입니다. 부활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사순시기가 되면 40일간 매일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는 수난으로 가까워져갑니다. 복음의 증언을 통해 어떤 과정들을 거쳐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받고 부활하셨는지 듣게 되지요. 오랜만에 오늘은 복음에 대한 나눔을 하고자 합니다.

요한 복음 1장부터 12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자신에 대한 급진적인 계시를 하는 내용입니다.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만큼,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늘어가죠. 어떤 학자는 요한 복음의 1장부터 12장까지를 표징의 책이라고 부르는데요, 일곱 가지의 중요한 표징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표징은 예를 든다면, 사람을 낫게 해주고, 오천명을 먹이시고, 죽은 이를 살려주신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표징과 기적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표징(semeion)과 기적(dynamis)은 성경에서 다른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기적이라는 표현은 주로 공관복음에서 사용되는데, 권능에 의한 이벤트와 같은 기쁜 사건이 기적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표징은 단순히 기쁜 소식이 아니라, 어떤 다른 것을 보여주는 증거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즉, 표징을 통해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권능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이를 뛰어 넘어 표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란 증언을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즉, 표징은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나누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애석하게도 표징이 하는 역할은 모든 이에게 환한 증거로써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을 갈라놓는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표징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했던 이유는 오늘 복음의 “그분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표현에 대해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때. 참 생소한 표현이지요?
요한 복음에서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은 두가지가 쓰입니다. 바로 그리스어로 ‘호라’라는 단어와 ‘카이로스’라는 단어입니다. ‘호라’라는 표현은 하느님이 정하신 때를 말하고, ‘카이로스’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결단의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의 마지막 말인 “그분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호라일까요? 카이로스일까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정하신 때’를 가리킬까요? ‘예수님의 결단의 때’를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로 ‘하느님의 정하신 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고, 죽이려 합니다. 출신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메시아라고 인정하지 않았고, 분노가 조금씩 끌어오르고 있습니다. 아직 당신의 때가 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누구에게 잡히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만 계십니다. 왜냐하면 요한 복음에서 표징은 단순히 예수님의 기적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때가 올 때까지, 유다인들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단순한 군중들도 자신이 본 것을 가지고 판단하게 됩니다. 과연 이 분이 메시아일까, 아니면 사기꾼일까 고민하기도 하겠죠. 그리스도를 믿었던 사람들은 기뻐하며 주님과 함께 했고, 미워했던 사람들은 죽일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과 사건의 소용돌이에 주님은 기꺼이 들어가실 것입니다. 기쁨과 분노, 갈등과 평화 그 혼돈의 시기를 그리스도는 우직하게 걸어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지 않나요? 우리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이것이 주님의 뜻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장난일까, 하고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죠. 또 과연 하느님이 계실까, 라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요. 더욱이 우리의 삶은 단순히 무 자르듯이 “평화로워” 혹은 “갈등 그 자체야”라고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긍정적임과 부정적임이 함께 공존하고 있고, 기쁨과 슬픔, 갈등과 평화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예수님처럼 우직하게 이 상황들을 걸어갈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기왕이면 우리는 표징을 믿는 기쁜 사람들이면 좋겠습니다.

사순시기가 절반을 훨씬 넘겼습니다. 이제 복음들은 예수님의 수난에 집중합니다. 앞으로 군중들이 어떻게 의심할지,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지, 제자들은 어떻게 행동할지, 우리의 그리스도께서는 이 상황들을 어떻게 살아나갈지, 우리는 지켜보게 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복음을 통해 하느님의 때가 언제 다가오는지,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언제 결심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우리 지금동 공동체가 언제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복음들을 통해 주님이 걸어가신 모든 과정을 생생히 지켜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