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기도

3월 28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등록일
2020-03-28
조회
554
파일
0328강론.hwp

사회적 거리두기가 반드시 필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방지를 위해 사람간의 접촉을 최소화 하고 2m이상 거리를 두고 만나는 것이 미덕이지요. 우리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하기에 거의 모든 시민들이 열심히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싶어도 쉽지 않은 세상이기도 합니다. 지난 번에 큰 사건이 일어났던 구로 콜센터 기억나시는지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전화기들, 가림막들. 비단 콜센터만의 이야기는 아니지요. 좁은 면적에 생활을 공유하는 아파트와 건물들. 우리들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효율성을 극대화해서 삶의 양태를 꾸려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올해 코로나라는 국제적인 질병이 생기며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형태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많은 전염병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제 세계는 코로나가 발병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삶의 형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즉, 이제 우리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효율성이 아니라, 다른 것을 선택해야할 때가 온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앞에 두고 메시아에 대해 논합니다. 눈 뜬 장님같지요. 그들이 주장했던 내용들이 아예 신빙성이 없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그동안의 예언들과 성경의 증언들을 통해 받아 들여졌던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그리스도는 다윗 가문에서 나와야 하고,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메시아는 이미 와 있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숨어 있다는 견해. 율법들.’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사상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최고 의회 의원들과 바리사이들이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를 제대로 보았다면, 그러니까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그리스도를 보았다면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죠. 단순히 편한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 가운데 한 사람, 니코데모만이 말합니다.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단죄하는 것은 잘못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 안에서 듣지 않고 그분이 하신 표징을 알아보지 않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니코데모는 하느님의 계획을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계명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살아 숨쉬고 약동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이, 종교적인 교리가 틀 속에 갇혀 생기를 잃어버리게 두어서는 안됩니다. 현재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복음을 우리는 포착해야 합니다. 순간 순간 우리가 삶아가는 삶 속에서 내 눈으로 보고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자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삶을 그리스도께서는 살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 뜬 장님처럼 그리스도를 앞에 두고 메시아를 찾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니코데모의 영감을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효율을 극대로 하는 시대는 끝난 것 같습니다. 바라지 않았지만 우리 세상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앞으로 많은 시간 불안하게 살아야 한다고도 몇몇의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의 형태를 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조금 더 사람들에게 친화적인 분위기가 될 수 있도록, 개개인의 기본적 삶이 보장될 수 있도록,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은 어떨까요? 분노와 불안이 아니라, 안전과 평화를 꿈꿀 수 있는 세상이 되길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