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상리는 연천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주변에 산지를 끼고 있다.

본래 연천현 동면의 지역으로 웃골이라 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웃골에서 이름을 따서 상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신망리, 고터동, 다방거리, 새능, 웃골, 쟁골, 좌찬이, 큰밤골, 황해촌 등이 있다.

신망리는 경원선 서쪽에 형성된 시가지로써 이곳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5월 피난민 정착지역으로 지정되어 미군 제7사단에서 3만평의 부지 위에 세대당 330㎡의 대지에 59.4㎡크기의 목조가옥 00호를 건립하여 선착순으로 피난민을 입주시켰다.

당시 연천읍에서 가장 먼저 입주가 시작된 이곳을 미군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살라는 뜻의 신망리(New Hope Town)로 명명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신망리 지역 신자인 박선자 누갈다 자매 회고에 의하면 1963년에 연천으로 이사 올 그 당시에는 동두천에만 본당이 있었고 연천군에는 전곡에 공소뿐 이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신망리 지역 사시는 이름 미상인 장막달레나 자매분과 둘이서 지역예배를 드리시게 된 후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다 보니 신망리 지역에도 차츰 교우가 늘기 시작 했다고 한다.

1963년 이름 미상인 장막달레나 자매 본인 집에서 시작한 신자수가 늘어서 1967년 1월 29일부터 초대공소 회장인 김영운 미카엘 형제분 주도 아래 교우들이 대륙상회, 약방(미광 사진관)으로 옮겨 다니며 어렵게 공소 예절을 드리기 시작했다.

이때에는 동두천 성당 제6대 한희동 그레고리오 신부를 한달에 한번 초대하여 미사를 보았고 신망리 신자수도 8세대 32명으로 늘었으며 늘어난 신자들이 멀리 전곡공소에 다니기 어려워 가까운 곳에 신자들이 주일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공소를 신축할 예정으로 김영운 미카엘 공소회장과 강정석 요셉 형제 외 여러 형제분들이 벽돌을 찍어 자재를 조달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1971년 6월 13일에 지금의 35연대 앞에 들깨 밭으로 사용중인 공터(상리 29번지의 9호69평, 10호 200평)에 대지 269평, 강당 34.5평, 부속건물 12평, 창고 3칸 건물로 총 공사비 50여만원을 들여 신망리 공소를 완공 한 뒤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공소 축성식을 성대히 가졌다.

공소 신축 후 동두천본당 제7대 안상인 요셉 신부가 매월 한번씩 공소에서 미사를 집전 하였고 이때 신자 수는 17세대 74명으로 늘었다 함.

전곡성당 제5대 박대웅 세레자요한 신부 시절 신망리공소를 신축할 예정으로 공소건물을 방치하여 시설물 일부가 도난 당하고 훼손되어 우범화 될 가능성이 커져 사용이 불가하였다. 이때 공소회장은 이호순 레오 형제분이 맡아 주셨다.

연천성당 제2대 유병만 가브리엘 신부 시절에 신망리공소를 복원시키려 하다가 진입로가 없는 맹지에 타인 명의의 땅이 포함되어 있어 복원을 하지 못하였다.

연천성당 제4대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시절 공소를 현재 위치인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상리로 34번길 19-1(상리 175-11)에 땅 2필지를 구입하여 신축하였다. 건축자금은 신부님의 모금과 교우들의 헌금으로 충당하였다.

2003년 9월 4일에 경기도 최북단 본당으로 승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