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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신부와 함께하는 대중 음악 이야기 9- 민물 장어의 꿈(신해철)
- 등록일
-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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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신부’와 함께하는 대중 음악 이야기 9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삶’도 ‘세상’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부드럽고 로맨틱하며 이해심 많은 등등의 모습일거라 생각했던 시절에는, 그러는 척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부조리들 안에서 오는 내면의 부대낌과, 내가 지켜야 할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이 아닌 방식으로 대하는 것들을 지나치지 않기에, 제가 원했던 바와 달리 싸움닭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왠지 제 눈에 진심으로 사람과 삶을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부드러운 모습 너머에 거칠고 투박한 모습들이 있더군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깨달은 것은, 진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삶과 사람을 지키기 위해, 어렵고 힘든 일들을 고민하며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처절하게 투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투박한 거칠음이 진짜 사랑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살펴봐도 은근히 투박하고 단호하신 면이 있으시다는 것은, 조용히 말해봅니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옳고 그름 너머에 있는 진리의 추구, 그리고 진정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는 거침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 안에 사랑을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힘 앞에서도 투박해질 수 있는 용기를 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며, 제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아가길 희망합니다. (사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투박할 필요도 못 느끼는 것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소개할 가수는 ‘신해철’입니다. 몇 해 전 의료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버린 ‘마왕 신해철!’ 저에게 신해철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며,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처절한 투쟁 가운데, 저기 멀리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아갔던, 제 삶의 롤 모델 중에 한 명입니다.
신해철은 대학가요제를 통해 ‘무한궤도’로 데뷔하였고, ‘넥스트’라는 음악계의 큰 획을 그은 밴드의 보컬 및 프로듀서로 활동 했습니다. 신해철은 시대를 뛰어 넘은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안에, 철학과 출신다운 날카로운 시선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그의 노랫말을 섞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음악들을 마구 방출해 내기 시작했죠. 그의 이력은 여기서 다가 아닙니다. 신해철이라는 한 인간으로서 사회에 가진 생각들을, 라디오를 통해 그리고 각종 매체들을 통해(100분 토론에 가장 많이 참여한 패널 중 한명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주장했었죠. 그래서 ‘마왕’이라는 별명도 얻게 된 것이죠.
누군가는 ‘마왕’이라고 부르지만, 저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철저히 발을 땅에 붙인 채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려다 보고, 인간의 작음을 인식하면서도,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며, 그 거대한 힘에 좌절하다가도, 언제나 눈은 저기 멀리에 있는 이상향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삶의 길을 멈추지 않고 꿋꿋이 걸었습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시궁창 같은 현실과 자기 자신의 비루함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사랑했기에, 마왕처럼 세상에 사랑을 외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할 노래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민물장어의 꿈’입니다. 함께 들어보실까요?
민물 장어의 꿈
신해철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삶의 완성’은, 결국 하느님을 만나 뵙게 되는 그 날, 곧 죽음 앞에 오롯이 남겨졌을 때 그제서야 완성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제 장례식장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지길 소망합니다. 제 장례식에서 울려 퍼졌으면 좋을 노래들은 제 마음속에 꼭꼭 챙겨두고 살아가는데요. 이 ‘민물장어의 꿈’은 꼭 제 장례식장에서 흘러 나왔으면 좋겠다고 꿈꿔 봅니다.
신해철은, 아무도 걷지 않는 그 좁은 길을 걸으며, 아니 사실은 사람마다 각자 다른 저마다의 길이 있기에, 그 어떤 길도 넓은 길은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지독한 외로움과 자신이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에 싸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깎고 자르며 진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마주하는 것만이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하기에, 지독하게 떨쳐 내지 못하는 자존심을 감싸 안고 묵묵히 길을 걷습니다. 강물이 모여 흘러드는 것 같이 내면으로 깊이 숨어든 진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부족함들은 옆에 있는 사람들의 온기로 채우면서, 그는 걸어갑니다. 결국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그 길을 말입니다.
하느님을 찾아가는 신앙의 길을, 이 노래 가사처럼 잘 드러낸 것이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라 하신 그 길을 찾기 위해 좁은 길로 들어서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비우고 나의 깊은 내면을 바라보며, 이웃의 따스한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길을 발견하고, 힘들어도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나의 존재를 찾아가는 그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의 여정이 아니었던가요?
한편으로는 신해철이 부럽습니다. 신해철의 죽음 이후에도 우리에게 이 노래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의 삶이 노랫말 같은 삶이었다고 공감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해철이 툭하고 뱉은 이 노래는 제 삶을 뒤집어 놓습니다. 신해철에게 이 노랫말은 이제 ‘과거’요, ‘완성’이지만, 살아있는 저에게는 ‘미래’요,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길을 걷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에 신해철이 부럽기도 하지만, 나도 그 길을 걷고자 다짐하기에 이 노래는 ‘희망’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여러분들도 나는 누구인지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질문은 결국, 내가 아니면, 아무도 대답해 주지는 않으니까요. 여러분,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