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복음묵상

3월 26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등록일
202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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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독서와 복음을 읽으신 후 묵상을 나눕시다.

 

오늘 들은 예수님과 유다인들의 대화는 그제 복음이었던 양 문옆의 벳자타 못에서 38년 동안 누워있는 병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사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 병자를 치유하여주신 날이 안식일이라 하여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일에도 일을 하는 이유는 아버지께서도 계속해서 일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에 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는 일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씀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그대로 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복음이 계속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아들과 아버지와의 이 관계를 증언해 주는 분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바로 그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 그 자체가 바로 증언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보면 예수님의 모든 삶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이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직접 증언해주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믿지 않아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끝으로 예수님을 증언해주는 것은 성경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겠다고 하는데, 그 성경이 증언해 주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믿고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더 이상 무슨 증언이 필요합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38년이나 들것에 누워있었던 이를 치유해 주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런 예수님을 보내셨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앎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증언들이 허공에 메아리처럼 날아 가버리는지 아니면 내 마음 안에 깊이 들어와 있어 나를 변화시키는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변화가 없으면 그러한 것들은 증언이 아니라, 쓸데없는 풍문일 따름입니다. 사순시기는 그런 예수님께 대한 증언을 되새기는 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신자들과 함께 지내는 미사가 중단되었다고 사순시기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