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복음묵상

4월 10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등록일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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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복음 말씀으로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를 듣습니다. 해마다 오늘이면 듣는 말씀이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 좌절감이 밀려듭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전례 중에 십자가 경배예식을 합니다. 반란을 일으킨 노예나 로마제국에 도전한 모반자들에게 행하는 사형방법인 십자가를 우리는 구원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 또한, 어떻게 가능한 일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이러한 모순의 악순환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 사람들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본인이 가르친 대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실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십자가가 그들 자신이 지어야 했던 것이었음은 더욱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웠으면서도, 나중에는 십자가와 예수님을 분리시키려 하였습니다. 빌라도가 바라빠냐 예수냐 하고 선택권을 주었을 때 사람들은 큰 목소리로 바라빠를 놓아주라고 외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이들이 예수님께서 막상 십자가에 달리시니 이제는 예수님을 향해 내려와 보라고 소리칩니다. 막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니 이제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떼어 놓으려고 합니다. 무엇입니까? 고통의 십자가는 나에게서 벗어서 남에게 지우려하고, 영광의 십자가는 남에게서 빼앗으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십자가에 우리의 구원이 달렸다고 노래하지만, 고통의 십자가는 외면하여 다른 사람에게 혹은 예수님께 지우고, 그것이 영광을 향할 양이면 이내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소리칩니다. 고통 없이 영광을 차지하려 합니다. 죽음 없이 부활을 기다립니다. 실제로 보십시오. 우리가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십자가들은 고통의 십자가가 아니라 이미 영광을 받은 번쩍번쩍 빛나는 십자가들뿐이지 않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가르치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날입니다. 죽기까지 하시며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이 놀라운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는 주님의 수난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 참여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이웃에게 다가가서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 들이닥치는 고통에 대해서도 힘들지만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코로나19라는 이 시대의 십자가를 어떻게 지시겠습니까? 내 개인 내 가족만이 아니라 공동체 차원에서 그 '십자가 지기'를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